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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죄를 덮기 위하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12-01 14:22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죄를 덮기 위하여
(벧전 4:8)

가린다고 가려질 수 없는 것, 숨긴다고 숨겨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는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되어있고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이처럼 꼭꼭 감추고 가두어 놓았다 하더라도 바늘 구멍만한 틈만 보인다면 어떻게 해서든 새어나오는 물처럼 그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 죄의 본능입니다.

따라서 죄 덩어리를 그 자체로 아무리 꽁꽁 묶어서 깊이 묻어 두었다 할지라도 작디 작은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오듯,  깊이 파묻은 것 같을지라도 반드시 죄 덩이는 묶인 끈을 풀고 묻혀진 곳을 헤짚고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숨기고 묻어 두었을 때 보다 더 큰 덩어리로 자라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서 잠시 의아한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덮는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죄를 덮을 수 있다는 말씀에 어쩌면 우리는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죄를 덮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에 한 번 더 골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죄는 반드시 해결하고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고 옳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죄를 덮어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덮어준다'는 단어가 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탓입니다.

또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죄를 덮어 준다는 것인가?'

'이것은 잘 못 된 사랑 아닌가?' 라는 마음에 의해 사랑에 대한 불신마저 상당히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죄를 덮어준다는 말씀만 듣게 된다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사랑때문이라는 말씀이 있기에 이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감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렇다면 이 말씀이 정답이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 뿐 아니라 이 말씀이 있기에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사랑을 언급하며 사랑의 소중함을 노래합니다.

여러분.
일방적인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 곧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일방적이라고 한다면 때로는 고귀한 사랑을 언급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하여 모두가 다 동의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지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실 사랑이 그 역할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주는 대상과 받는 대상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주는 쪽을 가르켜 사랑을 공급한다고 비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어디선가에서 솟아나 흐르고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기만 하면 그 역할은 다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랑이 흐르는 물과 같다면 어제의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매일 매 순간이 늘 새롭기만 할 뿐 지나간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인 듯 하지만 결코 하나님은 일방적인 사랑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구원은 일방적인 것이 맞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두고 하나님이 구원받을 대상으로부터 여러가지 의견을 들으시고 조건을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법은 일방적임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까닭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도 그저 일방적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 속에 살아가는 것일 뿐 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장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받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받기 원하심은 그저 아무에게나 사랑받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도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다시 만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랑하시기때문에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으로만 족하다 하시지도 않으셨고, 그저 너희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사랑을 받기만하면 된다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일방적인 사랑은 흘러갔기에 또 다시 새로운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만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반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을 고백하며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신이라 불리우는 존재도 섬기는 자들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베푼적도 없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엄격함과 두려움 속에서 무조건적인 숭배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사랑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게 하려는 것이지 영원히 일방적인 사랑을 받기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방적인 사랑을 베푸셨고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뿐 아니라 이제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랑하심을 알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그래서 사랑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사랑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단순히 일방적이거나 편협한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의 원천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흘러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흐르더라도 그 안에 속한 모든 것들, 바위같은 돌 뿐 아니라 자갈과 밑바닥의 흙이며 물고기며 수초등 모든것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훑고 지나가며 덮고 품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스쳐가기만 한다면 일방적이지만, 훑고 덮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일방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흐르기만 하는 것이라면 스쳐가기에 또 다시 만날 수 없지만, 훑고 덮은 물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안에서 살고 그 속에서 죽어야 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인간이 생각하고 단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살려야하고 구원하기 위한 일방적인, 아니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고 나를 구원한 그 사랑을 안다면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참 된 사랑은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우리가 힘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때 허다한 죄를 덮으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허다한 죄를 덮으신다는 것은 그저 죄를 묵인하고 없었던 일로 하시거나 모르는척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랑이 죄를 덮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가 가려지고 숨겨짐으로 잠시 보여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가리고 숨겼던 죄가 어느 순간 틈을 비집고 나와 드러날 때는 작디 작은 눈송이 만했던 것이 눈덩이 만큼 커져 있어 감당하기 힘이듭니다.

그리고 드러난 눈덩이와 같이 불어난 죄는 죄의식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실망의 싹을 틔우며 좌절의 줄기를 뻗고 비난의 잎을 맺으며 정죄와 분열의 열매를 내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죄를 깊은 곳에 꼭꼭 숨겨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여 처음부터 제대로 볼 수 있게합니다.

그리고 허다한 죄를 덮고 있는 사랑은 그 안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는데, 온유의 단비를 뿌리고 투기와 자랑 성냄과 무례함 유익과 불의를 걸러내고 차단하며 끊임없이 진리의 거름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간혹 덮고 있는 그 사랑의 품을 빠져나가고자 발버둥을 칠지라도 정말 오래참으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죄의식의 뿌리가 아닌 사랑의 뿌리가 내리도록 하고 회개의 싹을 틔우고 용서의 줄기를 뻗게 하며 자유함의 잎을 맺고 치유와 화해의 열매가 열리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언급한 바 대로 사람은 결코 사람이 가진 일방적인 사랑으로 이 일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화답이 있어야합니다.

때로는 깨달음으로...
때로는 돌이킴으로...

그러나 반드시 사랑으로의 화답으로...

사랑은 흐르는 물처럼 흘려보내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착도 아닙니다.

사랑은 덮어주고 그 안에서 살게하는 것입니다.

회복되고 살아야하는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서로가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을 때, 사랑으로 인하여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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