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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여기까지가 아니라 저기까지입니다!'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1-10 22:06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여기까지가 아니라 거기까지입니다.
(요 20:19‭-‬29)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마'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는 굳건한 믿음의 상징이 아니라 애석하게도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의심' 이라는 용어가 붙습니다.

'굳건한 믿음의 도마' 가 아니라 '의심많은 도마' 

이것이 도마를 기억하고 언급할 때 마다 거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도마는 우리가 알고 언급하는 것과 같이 믿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의심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도마가 그렇게 불리게 된 상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모여있는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했는데, 제자들 모두가 모인 그 곳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이 후 제자들은 도마에게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그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덧 붙여 말하기를 주님 손의 못자국을 보고 그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도마를 포함해 제자들이 모인 곳에 다시 오신 주님은 도마에게 손을 뻗어 주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보고 믿는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도마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았기에 믿는자가 아니라 보지 못해도 믿는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내용을 통하여 지금까지 도마는 마치 의심의 대명사처럼 불리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에 관한 우리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을 보게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무척 많은 것 같지만 과연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을 돌아볼 때 마음으로 믿는 것만으로 만족하다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마치 주문 외우 듯 이야기를 잘 하는 것을 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의에 이르게된 믿음이 입술의 고백 뿐 아니라 나의 모든 삶에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르게 된 믿음만으로도 족하다 여기며 믿음으로 이루게 된 의로움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늘도 쉬지 않으시는 주님의 일하심에 거기까지 순종함으로 동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어 이르게 된 의로움을 입으로 시인하는 삶입니다.

다만 의에 이른 것 까지만 해도 대단하다 여기며 서로를 격려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한 위안을 삼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나누고 경계선을 만들어 그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믿음에 있어서 스스로 선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마치 정체되고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신앙을 우려하며 드리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날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가야 마땅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뜻이 아니면 멈춰서리라고 고백하지만, 멈춰서는 것 역시 믿음의 전진이지 믿음의 정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소위 온라인 예배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주일 예배를 집에서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드린다는 것에 대하여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특정한 분들이 아닌 이상 부정적이었음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에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로 인한 신앙의 양심이나 스스로의 믿음에 꺼리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금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무감각해지거나 생각이 바뀌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떠한 장소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가 된다면 어떻게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고민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돌아볼 때 그 예배가 그저 자신의 편의와 생각이 우위에 있는 것이라면 속히 깨어나고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그저 예배를 통한 스스로의 만족함이 앞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믿기에 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신앙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의롭다 여김 받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

자세히 보면 그의 앞에 수식어는 성경을 보는 누군가가 붙여준 것입니다.

사실 의심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 한마디 들은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24:38)

그는 베드로입니다.

주님은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오다가 두려움을 느끼고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물 위를 걷던 베드로의 마음에 의심이 생기자 곧 그는 물 속에 빠졌는데 그의 마음에 의심이 생긴 것은 곧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렀다고 칩시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의로운들 그 의로움이 변함없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마음으로 믿어 얻게 된 의로움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기만하면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에 닥친 그 어떤 어려움도 모두 이겨 내리라 자신 할 수 있습니까?

이에 마귀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이르게 된 의로움을 무너뜨리고 다시 빼앗기 위하여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도 늘 경계하며 어제보다 오늘을 더 열심히 악한 꾀를 만들고 삼킬자를 두루 살피며 살아가는데, 의에 이르렀음에 안심하고 족하다 여길 수 있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부디 신앙이 비슷한 그룹끼리 모여서 서로의 의로움을 격려만하고 그 안에서의 격려로만 위안을 삼고자하는 모습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만일 그 그룹이 늘 정체되고 정지 된 신앙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모임일 뿐 입니다.

베드로를 다시 보십시오.

그의 마음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주님을 바라볼 때 가장 담대한 믿음으로 물에 뛰어 들도록했고 물 위를 걷게 했습니다.

누가 그의 믿음을 보며 의롭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마음으로 믿는다 할지라도 그가 물 위를 걷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아무리 그의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을지라도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마귀는 변함없이 베드로를 공격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잠시 아주 짧은 몇초 만이라도 '너가 서 있는 곳을 보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바람이 사납고 물결이 요동치는 위험한 물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이윽고 그 속삭임에 정말 잠시 느껴본 바람이며 내려다 본 물결이었는데, 순간 믿음으로 의로웠던 베드로의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앞에 계신 주님은 멀어만 보이고 바람에 요동치는 물살이 지금 당장의 현실임을 느끼게합니다.

배에서 뛰어내려 물위를 밟고 걸어온 거기까지도 돌아보면 기적이자 은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 있는 그 자리는 위험과 두려움의 자리처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걸어왔지만 베드로의 눈에는 더 이상 주님이 아닌 깊은 물만 보이고 과 거센 파도 소리만 들려옵니다.

결국 베드로는 물에 빠집니다.

보십시오.

마음으로 믿음이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주님을 보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렀는데, 세상에서는 주님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삭임 하나에 잠시 시선을 돌아 본 것 뿐인데 어느 순간 그 틈을 비집고 믿음이 아닌 두려움이 몰려와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의심의 마음을 끌어드립니다.

누가 이것을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인생이 많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바로 건져 주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입니다.

주님도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중요하지만 연약한 인생을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마음에 일어난 의심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를 가리켜서 '의심많은 베드로'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마에 대해서는 의심이 많다는 언급이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삶을 마칠 때 까지 평생 의심 가운데 살아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활하신 주님 소식을 전해 듣고도 믿지 못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방정맞은 입으로 인하여 그의 이름과 더불어 의심이라는 단어가 붙게 된 것입니다.

도마도 주님의 제자이고 다른 제자들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충실히 감당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도마 역시 그의 마음에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큰 실 수를 범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믿음으로인한 의로움에 안주하였다는 것입니다.

분명 도마도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에 슬퍼하였지만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모두가 모여있던 그 장소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그로 인해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날 자리에 없었던 도마에게 부활하시고 찾아오신 주님의 소식을 전해 주었건만 도마는 믿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제자들과 도마와의 차이점이 없습니다.

만일 다른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자리에 없었더라도 역시 그 이야기를 쉽게 믿었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찾아 오시기전에 주님의 무덤에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은 것을 보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20:9)

무덤에 가 보았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음을 확인했지만, 그로 인해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믿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찾아오시고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신 후 주님을 보며 이윽고 말씀을 깨닫고 기뻐한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자들이 있던 그 날 그 곳에 계셨다면 어떻게 반응 하셨을 것 같습니까?

주님이시라는데 당연히 알아보고 그 즉시 기뻐하며 믿었을 것이라고 여기십니까?

정말 그렇다면 분명 여러분은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늘 입으로 시인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사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아마 조금 더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도 더 확인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당시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것을 보고 보여주신 것 까지 본 것이지, 자신의 믿음을 인정하기 위해서 확인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들의 생각에 누구나 이해 할 수 있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믿을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면, 모두가 나와서 손의 못 자국을 자세히 확인해 보고 허리의 구멍이 창자국이 확실한 것인지 점검해 보았을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를 보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이해시켜 주실 것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것 까지 그것으로 만족하며 오직 주님을 보면서 기뻐한 것입니다.

이적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이적과 표적은 주님이 살아계심과 함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보여지는 것입니다.

이적으로 인하여 나의 신앙이 확고해지고 표적을 통하여 내 믿음을 굳건히 하리라는 생각은 잘못 된 것입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모든 이적과 표적은 주님이 아닌 내 중심적이어야 하며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시라는 더 명확한 증거를 통해 확인한 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제시하신 표적 만큼에 만족하며 그저 주님이시기에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걸었던 믿음은 주님을 보며 기뻐할 수 있었고 두려움 속에 침체 되었던 믿음은 다시 회복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은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장먼저 도마를 향해 주님의 부활 소식과 함께 찾아오신 주님, 자신들이 만난 주님을 전하며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그저 알고있는 바를 조용히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뜻 합니다.

그 때 전하는 사람 뿐 아니라 전해 듣는 사람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는 어리석게도 여기서 실수를 합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의심의 마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그의 할 일은 온전히 믿지 못 할지라도 묵묵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이 만난 것 처럼 자신도 주님을 뵐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렀지만 두려움 가운데 일어나는 마음의 의심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안타까워하시며 손잡아 건져 주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자신의 입술로 주워담지 못 할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불신을 토해냅니다.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자신이 눈으로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못 믿겠다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겠다는 결단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입으로 시인할 때는 구원이 이르지만, 입으로 부인할 때는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들 마저 같은 의심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도마의 실수이고, 이 후 명예롭지 못 한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마를 그리 부를지라도 주님은 도마를 그렇게 취급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도마 역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 주님은 다시 찾아 오셨는데, 이는 어찌보면 순전히 도마 때문에 그리고 도마를 위해 찾아 오신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믿음을 잃거나 옳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아프심은 가룟유다 하나로 족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도마의 믿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의 바램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 없는자가 아닌 믿는자가 되기를...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제자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동거동락하시며 많은 말씀과 함께 권능을 주신 것 아닙니까?

늘 함께하시며 그들을 깊이 사랑하셨고,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어도 다시 찾으시고 회복시킨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을 넘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시며...

다시 찾아 오시고 손의 못자국과 허리에 창자국을  만져보라시는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음에 만족한 듯 했던 도마는 자신의 정체된 믿음을 깨닫습니다.

도마는 손으로 직접 주님 손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만져봐야 믿겠다던 자신의 말이 믿음을 더 확고히 하기위한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두려움과 의심의 마음을 넘어 얼마나 불신앙적인 이야기였는지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러기에 도마는 와서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아닌 믿는자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에 모든 의심을 내어 던지고 고백합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는 비로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찾았습니다.

주님은 의심많은 도마 뿐 아니라 입술로 부인하는 도마를 돌이키게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더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필히 도마에게 뿐 아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보았기때문에 믿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보지 못하여도 믿는 믿음입니까?

보여주시면 믿고, 보게 된다면 믿을 수 있기에 오늘도 보여주시기를 기다리며 제대로 보여주실 때까지 마음으로 믿으며 의롭다 여겨짐에 만족하며 그러려니 살아가시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예배를 드렸기에 안심하고,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마치 기독교 문화속에 있기에 평강할 수 있는 것 처럼...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가장먼저 그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평강만 있기를 바라시고 평강만을 빌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를 보내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혼자 가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우리에게 보내심과 같이 주님도 우리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누구든지 죄를 사하면 사함을 받고 그대로 두면 죄가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은 죄의 사슬에 묶여있는 곳에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보냄을 받아 그 죄를 사함 받도록 사슬을 풀어주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으로 믿음에 의에 이르러 그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는 여러분.

이제 보내시는 곳 마다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여러분의 입으로 시인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그 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오늘도 그 믿음을 마음 뿐 아니라 여러분의 삶 구석 구석마다 증거하고 선포하는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11)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19~29)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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