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사랑의 편지 ♧
전문 서적은 지식을 제공하며 탐정 소설은 추리력을 키워준다. 또한 위인들의 전기는 꿈과 용기를 북돋아 주나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이로부터 온 편지일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미디어 문화가 발달하고 벤츠 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거리 곳곳에 설치되었던 우체통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사랑의 표현은 오히려 갈급해 하고 있다.
거리마다 핸드폰의 자판을 두들기며 길을 걷는 젊은이들, 검색창을 위아래로 훑어내리며 종종걸음치는 남녀노소 구별 없는 길손들, 버스나 전철 등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재바른 손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편지 지에 메시지를 담아 띄우기에는 너무도 바쁜 세월들을 살고 있지만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사연들은 아날로그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부딪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이미 극복하여 실시간 채팅으로 시공의 벽을 무너뜨린다.
사랑의 편지, 편지의 양식은 다르지만 예나 오늘이나 설렘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두군거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듯 누군가의 애정 표현은 지나쳐도 싫지 않다. 누군가가 아무리 가창력이 좋아도 그 노래를 몇 번만 들으면 질린다고 했다. 그러나 애정 표현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옛날 옛적 집배원의 신발에 불이 붙을 정도로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에는 팬팔을 통한 사랑의 편지가 숱한 커플들을 만들어 내었었다. 한 마디로 집배원의 역할이 커플 탄생의 최장수 인기 스타였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친 집배원들의 노고가 분명했지만 그 노고의 뒷얘기는 보람의 추억들로 가슴 뭉클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안방극장 드라마 제목처럼 진짜가 나타났다. 곧 하나님이 송신하신 사랑의 편지를 어느 날 이름 모를 천국 집배원이 너나 나나 그나 너나를 수신자라 부르며 배달해 주었다. 다들 설렘으로 펼쳐보았을 것이다. 또한 더러는 설렘 반 의심 반 긴가민가하며 편지를 개봉했을 것이다. 그러나 죄다 하나님의 첫 사랑 고백이었다.
세상에나 자기 독자를 내가 짊어져야 할 죗값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게 기꺼이 내어 주셨단다. 이 사랑 고백보다 더 심플하고 기적적인 사랑 고백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랑의 고백이 너무도 싫어 진절머리 난다는 사람도 있고, 천박하다고 하며 오히려 집배원을 핍박하는 사람도 있단다.
스데반 집배원은 돌에 맞아 순교했고, 야고보 집배원은 칼에 목 베임을 당하고, 베드로 집배원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고, 바울 집배원은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했고, 폴리캅 집배원은 화형 당해 순교했다. 죄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랑의 편지 전해 주다가 그랬단다.
혹 그대는 돌을 들거나 칼을 빼거나 십자가와 대못과 망치를 손에 쥐지 않았는가? 아니면 빌라도 법정에 운집한 군중들 속에 합류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며 목에 핏대를 세워 외치고 또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가룟 유다처럼 실속 챙기기에 급급하여 교회를 배신하거나 등 돌리진 않았는가?
돌이켜 헤아려 보자! 타성에 젖어 온 세월에 불감증마저 자아를 속여 불신과 세속의 가치론에 영혼을 담보 잡지 않았는지 고민 또 고민해 보시기 바란다. 사랑의 편지, 이제 개봉 해보자. 사도 요한은 그 편지를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으니 제발 모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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