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바람을 잠재울 바람골./아시아뉴스통신 DB |
제가 늘 다니는 산책길에 ‘바람골’이 하나 있습니다. 바람골은 주변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바람이 항상 많이 불어오는 길목을 말합니다. 여름철에는 이 바람골을 지나면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흐르던 땀을 잠시나마 식혀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이 바람골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바람골’은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은 날씨만 폭염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폭염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디를 둘러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소식이 더 많습니다. 타는 듯 한 날씨처럼, 우리의 마음이 타들어가게 만드는 뉴스가 끊이질 않습니다.
최근 신림과 서현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났을 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추모 글을 남겼다죠. “당신이 아니라 저 일수도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너무 무섭고, 너무 미안했습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그 이후에 모방범죄를 예고하는 글들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장난처럼 여기는 풍조.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공포가 급속히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도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 선생님을 지켜줄 수 없었던 것일까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검은색 옷을 입고 집회를 하는 수만 명의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지...우리의 마음을 옥죄어오는 이 시대의 폭염은 어떤 것으로도 식힐 수 없어 보입니다.
혹시 비가 많이 내리면, 이 잔인한 폭염을 식힐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많은 비에 대해서도, 올해도 어김없이, 큰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도 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오송 지하차도에 갇힌 분들도, 급류에 휩쓸린 해병 대원도...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답답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폭염과 함께, 한편으로는 홍수입니다. 이 시대의 폭염을 잠재워보겠다는 ‘정보와 기술’의 홍수, ‘좋은 강연과 코칭’의 홍수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가 홍수처럼 넘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 위에서 둥둥 떠다닐 뿐입니다. 폭염은 조금도 가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몸을 무겁게 만드는 습기처럼,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할 뿐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우리는 마르지 않는 빨래를 다시 입은 듯 축 늘어져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열기를 식혀주고, 습기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줄 바람...그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골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그 바람골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침 8:30분, 분주한 출근길 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급하게 지하주차장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먼저 타고 계시던 어르신께서 본인이 내리려던 1층을 취소하셨습니다. 한 시가 급한 출근길이니 젊은이를 먼저 보내고, 본인은 그 후에 다시 1층으로 올라오신 겁니다.
저는 이 어르신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참 어른이고, 바람골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헤아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배려. 저는 바로 이것이 어른의 자격이고, 이 시대를 시원케 하는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어른이 되고, 우리가 있는 곳이 이 시대의 바람골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