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7일 토요일
뉴스홈 사회/사건/사고
<현장의 눈>고향찾은 한국계 '플라세 佛국무장관'의 미소

[경기=아시아뉴스통신] 정은아기자 송고시간 2017-03-22 07:52

수원보육원출신, 7살 프랑스입양 후 42년만에 '국무장관'으로 수원방문

수원 파장동 '프랑스참전기념비' 방문.."고향에서 환대해주셔서 감사하다"
 
 
21일 수원 파장동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전용사들을 추모한 후 한국계 장 뱅상 플라세 프랑스 국가개혁·간소화 담당 국무장관이 국군 참전용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플라세 국무장관은 서울에서 태어나 수원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다 1975년 7살 프랑스로 입양됐다. 김광우 국가보훈처 국장과 이한규 수원시 제 1부시장이 "고향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사말에 42년만에 다시 수원을 찾은 플라세 국무장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아시아뉴스통신=정은아기자

한국계 프랑스인 장 뱅상 플라세(49· 한국이름 권오복)프랑스 국가개혁. 간소화 담당 국무장관이 21일 수원 파장동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를 찾아 참전용사들을 추모하고 헌화했다.

장 뱅상 플라세 장관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원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다 7살 되던 해인 1975년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었다.

그런 그에게 '수원'은 제 2의 고향이자 아픔을 담고 있는 장소인 듯 보였다.

김광우 국가보훈처 국장과 이한규 수원시 제 1부시장이 건낸 "고향 방문을 환영한다"는 인사말에 경직됐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고향'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때문인지 추모식 중간중간 수원의 하늘과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플라세 장관.

플라세 장관은 예정시간이 지났지만 기념비를 떠나지 않았다.

플라세 장관은 참석자들과 함께 30여분동안 가진 대화의 시간에 프랑스 참전군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프랑스군과 함께한 국군 참전용사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전쟁당시 지평리전투와 화살머리 전투는 프랑스 전쟁중 영웅의 이야기로 회자될 만큼 중요한 전투이며 프랑스군 참전을 기념하는 추모에 참석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플라세 장관은 "고향에서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어린 시절 수원 보육원에서 지냈었다. 저로서는 어려운 시기였다"며 아픈 과거를 밝혔다.

이미 최근 자서전 '뿌르꾸아 빠 무아!'(내가 못 할 이유는 없지!) 한국어 번역판에서 어린 시절 입양돼 장관이 되기 전까지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놓아서인지 플라세 장관은 말하는 내내 담담하면서도 편한 듯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고아원에서 돌봐주신 분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행사가 더 뜻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참전비를 떠나기전 묵은 과거를 씻듯 그는 "오늘 날씨가 좋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날씨를 오스텔리츠의 햇빛이라고 표현한다"며 밝은 미소를 보였다.

프랑스에서 '오스텔리츠'는 1806년 나폴레옹장군이 오스트리아군을 섬멸한 '오스텔리츠 전투'로 유명하다.

7살 프랑스로 입양된 후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자신과의 전투'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듯 이날 장 뱅상 플라세 장관도 '오스텔리츠의 햇빛'처럼 밝고 희망에 찬 '권오복'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