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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다녀오다...

[광주전남=아시아뉴스통신] 양도월기자 송고시간 2017-06-03 10:18

상해 임시정부의 가치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삼아
전남동부보훈지청 보훈복지사 김영해/(사진제공=전남동부보훈지청)

사드배치로 안팎이 시끄러운 상태이다. 중국은 한국산 제품 거부와 불매운동을 하고 중국인의 한국 관광을 통제하는 제재 등 경제 보복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니 혹시나 이러한 여파가운데 중국 현지 교민들과 유학생들의 안전문제는 없는지 심히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지인들의 안부가 매우 걱정되는 가운데 하필 이 시점에 중국을 다녀왔다. 물론 첫 중국 여행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현재의 중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듣고 있었기에 더 걱정되고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와 웃으며 반겨주는 조카얼굴을 보니 겨우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먼저 허기를 채운 후 본격적인 여행일정을 소화하기로 하고 짐을 풀기 위하여 숙소로 향했다.
 
중국 상하이 마당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참관가능시간이 짧고 점심시간은 휴관이어서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부리나케 숙소를 나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간판은 키 큰 가로수와 잎들로 가려져 자칫 놓치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왜소하게 매달려 있었다.

시내에서 보았던 거대하다고 느낄 만큼의 큰 간판들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왜소하게 매달려 있는 간판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교과서를 통해서 읽고 배웠던 우리의 유적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골목을 들어설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연통제를 실시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비밀 조직망을 통하여 임시 정부와 연락하거나 독립 운동에 가담할 수 있었고, 애국 공채를 발행하여 군자금도 전달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교 총장을 임명하여 파리 강화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게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대한민국의 자주성과 우월한 민족 문화를 인식시켜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에서도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게 되는데 그중 현재 보존되고 유적지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6~1932년까지 7년 동안 공무활동을 하며 사용되었던 임시정부 청사이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구(홍커우)공원 폭발 의거가 있은 후 일본군을 피해 부득이하게 상해를 떠나서 항저우를 비롯한 중국 6개의 도시를 유랑하다가 1940년에 충칭으로 옮겼다고 한다.
 
김구선생님이 쓰신 “양심건국”을 보면서 지난 몇 달 여 동안 겪었던 일을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러운 후손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조상들의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온갖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더욱 더 뿌리 깊고 강한 나라로 이어가게 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의 우리나라를 존재하게 한 근원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루쉰공원에 위치한 윤봉길의사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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