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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교회 박종일 목사,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1-02-04 10:24

충신교회 전 담임 박종일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막 7:24-30)

ἀλλ᾽ εὐθὺς ἀκούσασα γυνὴ περὶ αὐτοῦ, ἧς εἶχεν τὸ θυγάτριον αὐτῆς 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 ἐλθοῦσα προσέπεσεν πρὸς τοὺς πόδας αὐτοῦ· (Mar 7:25 BNT)
But after hearing of Him, a woman whose little daughter had an unclean spirit, immediately came and fell at His feet.(Mar 7:25 NAS)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Mar 7:25 NKR)

예수님은 가르치시던 곳을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가 이방인의 땅 두로 지방으로 들어가신 이유를 마가는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7:24)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친 몸을 쉬시면서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시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천하에 퍼진 후라 예수님의 존재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7:24).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립니다.  누가는 그 여인이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로보니게' (Συροφοινίκισσα 수로포이니키싸)는 '수리아'(Syrian) 지방의 '페니키아(Phoenicia)'라는 뜻입니다.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 여인은 유대인이 짐승보다 더럽게 여기고 적대시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헬라인들(로마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도 민족적 자존심에 가득차 있는 유대인들을 역시 적대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적대시하며 상종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경멸의 대상인 유대인 예수에게 와서 민족적 자존심과 수치심을 다 버리고 그 앞에 엎드려 간구한다는 것은 보통 이상의 용기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예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7:26)합니다.  '간구'에 해당하는 '에로타'(ἠρώτα)는 거듭하여 요청한다는 의미로 그 여인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실로 그 여인은 오직 딸의 구원을 위해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적 자존심을 모두 팽개치고 예수께 매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의 간절함과 절박함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7:27)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녀'란 하나님의 선민(選民) 곧 유대인을 가리키며. '배불리 먹게 하다'는 말은 본 상황에서 '유대인 환자를 먼저 치료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복음 또는 하나님이 구원의 시혜에 관한한 유대인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개'라는 표현 역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경멸할 때(시 59:6), 또는 상대방을 비하할 때와 악한 존재를 상징할 때 사용하던 말입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에 찬동하기가 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경멸하고 무시하던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의 마음과 감정은 거의 맨탈붕괴의 상태까지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고 응답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주여( κύριε 큐리에)라는 호칭은 마가복음에는 오직 이곳에서만 등장합니다.  물론 '주여'라는 호칭이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높임말일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참신앙이 내포되어 있는 호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은 이어서 "옳소이다"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를 표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언급하신 바 유대인의 우선권과 특수한 권리를 인정하는 동시에 비천한 자신의 존재('개')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제외되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마치 상 아래서 주인의 호의를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자신과 자신의 딸도 그러한 입장에서 주님의 호의를 기다리고 있다고 간청한 것입니다. 

'개'라는 말로 자신을 지칭할 때 받는 인격적 모멸감과 훼손된 자존심을 개의치 않고 주의 은총을 간청하는 모습은 극한 겸손(謙遜)의 표시입니다.  마가복음 7장은 여인의 이 같은 겸손과 유대인의 오만한 우월의식이 대비되면서 이방 여인의 믿음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향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말씀하시며 여인을 돌려보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대답에 매우 만족하셨으며 그녀의 내면에 깃든 독특한 믿음을 간파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평행본문에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방 여인이 안고 씨름했던 최대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순수하고 끈질긴 그녀의 믿음에 충분히 만족하시고 이제'돌아가라'(you may go, NIV)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병을 치료하신 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씀으로 완전한 회복을 전제한 말이기도 합니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는 선언을 통해 그녀의 믿음에 확실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특히 여기 '나갔느니라'는 말은 완료 시제로 그 선언과 동시에 이미 귀신이 그 딸에게서 떨어져 나갔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원거리에 있는 병자를 고치신 경우는 본서에서 이곳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께서 어떤 특별한 명령이나 외침 없이 당신의 거룩한 의지로 치유의 기적을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적 존재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인은 집으로 돌아갔고, 아이를 괴롭히던 귀신이 온전히 떠나고 아이가 침상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녀의 집에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선사하셨습니다. 그녀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예수께서 허락하신 선물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주님, 치료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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