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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목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0-03-12 17:26

수원 우리가꿈꾸는교회 김병완 담임목사.(사진제공=우리가꿈꾸는교회)

<신령하고 싶었어요>

1. 신령하다는 말을 나도 참 많이 오해했다. 
은사를 강조하는 교단에서 처음 신학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신령한 것은 곧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내가 학부를 학문했던 오순절 계통의 신학은 ‘방언’이 곧 구원 받은 사람의 증거라고 배웠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두 다 ‘방언’을 해야한다.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다)
생각난다. 한번은 손을 들고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두 팔이 떨렸다. 그때 알수 없는 확신이 들었는데, 이 손을 얹으면 누군가의 병이 나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번은 출석하고 있던 침례교회 청년부 담당 사역자분이 내가 다니던 학교를 아시고는 물으셨다. “너 혹시 병 고치거나 그래본적 있니?” 그때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그래본 적은 없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은 있습니다.”

2. 조믿음 목사님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부 구성원들이 ‘영적’이라는 말을 ‘신비한’으로 오도해 특별하게 신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헬라어 ‘카리스마’를 번역한 ‘은사(GIFT)’는, ‘은혜(GRACE)’로 번역되는 ‘카리스’에 어근을 두고 있다. 은혜로 주신 선물, 그것이 은사다.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언제나 ‘은혜’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각자의 은사로 인해 유명해진 사역자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쉽게 무너지는걸까?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는데 말이다. 바울은 말한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곧 ‘은사’)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1)

3.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주인’을 모시고 산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따름이다. 모름지기 주인이란, 불복종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목표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목에 줄을 매달아 끌고 다닌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2). 그것들은 분명 말도 못하는데도(2b),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우리를 사정없이 당긴다.

4. 나 역시 참 많이 <끌려다녔다>. 
내 안에 우상은 ‘내가 되고 싶은 나’였다. 그런 내가 되기 위해서 남의 것을 참 많이 흉내냈다. 목소리도 흉내내고, 걸음걸이도 흉내냈다. 말투도, 제스쳐도, 때로는 글을 쓰는 가운데도 똑같이 닮으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볼수록 볼성사납게 보았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나는 절박했으니까.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서 좋은 것들을 훔쳐서라도 내 것을 만들다보면 언젠가 나 다운 나,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이룰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내 모습을 거울로 보니, 눈, 코, 입이 제각각이었다. 거기 서있던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니었다.

5. 바울은 이제 <이끄시는 분>을 소개한다. 
그분은 우리를 강제로 끌고 다니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1b). 헬라어 ‘AGNOEO’는 4가지 경우로 사용되는데, 1) (알고도) 모르는체하다, 2) (대놓고) 무시하다. 3) (능력부족으로) 이해 못하다, 4) 의도치 않게 모르다. 라는 네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bdag). 이 중 오늘 본문은 첫 번째 의미로, (알고도) 모르는체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모른체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끌려다녔던 우상을 제거하고 주님을 따르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6.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오늘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재능도, 심지어 삶의 자리도 당신을 위해 제공하셨다. 바울은 서로 다른 은사를 받아 사역하는 사람들을 소개한 후(8-10)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11). 무슨 뜻인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그 사실을 전제하고, 우리 각 사람을 살펴 봐야 한다.

우리가 능력과 형편이, 삶의 자리가 저마다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 간격을 무리하게 좁히려고 하면, 우리는 우상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이 한 분의 계획 아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되어진 일임을 밝힌다. 

“은사(gift)도 여러 가지나(different kinds) <성령은 같고>, 직분(service)도 여러 가지나(different kinds) <주는 같으며>, 또 사역(ministry)은 여러 가지나(different kinds)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4-6) 우리를 저마다의 모습으로 사시게 하는 이유도, 그 속에서 “특별 은총”으로 바뀐다. 

7. 우리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각 사람에게” 가장 “유익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그것이 교회에 가장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조믿음 목사님은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적인 일을 부여하신 이유는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평신도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어떤 사람은 부목사로, 담임목사로, 또 어떤 이는 선교사로, 어떤 이는 집사와 장로로, 또 누군가는 개척을 하게 하심도..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려”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맞는 옷을 입히셨다. 그 옷을 입고, 그 곳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내가 주님께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신께로 오는 길로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길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더 이상 누군가를 부러워할 것도, 또 나의 변하지 않는 현실로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낙심할 것도 없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자리가, 오늘 내게 가장 필요한 자리이며, 유익한 자리이다. 또한 그 자리가 교회를 세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말한 신령하다는 건, “하나님이 나눠주신 선물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므로, 함께 고백하자.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 
“주님, 홀로 존귀, 영광, 찬양 받으소서!”

<고린도전서 12: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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