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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아버지의 전쟁"

[대전세종충남=아시아뉴스통신] 이광희기자 송고시간 2020-06-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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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뉴스통신=이광희 기자]
“모두 엎드려, 총알이 날아오잖아. 박일병, 박일병.......”

병실 한쪽에서 아버지가 고래고함을 질렀다. 그는 침대에서 양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눈알이 흔들렸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기세였다.

그럴 때마다 병원 조무사들이 달려들어 몸을 잡았다. 그 자리에 뉘었다. 몸을 뒤흔들었다. 철제 침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버님은 저렇게 수시로 고함을 질러요. 그래서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힘이 듭니다.” 

요양병원 관계자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버지는 최근 들어 치매가 갑자기 심해졌다. 수시로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쳤다. 집에 있는 가위를 들고 허공을 찔러댔다.

밤이나 낮이나 소파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알을 돌렸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요양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모신 건 3주전이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그날도 날씨가 더웠다. 6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느라 고단했다. 더욱이 아버지는 더했다.
 
집에 내려가자 안방이 난리였다. 그곳에 있던 옷가지며 이불이 보자기에 싸여 있었다. 이삿짐을 보는 듯했다. 속옷과 막 입을 옷가지 그리고 이불도 몇 가지만 골라 싸놓았다. 

“왜 이래 늦었나. 빨리 가야지.”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집이 들썩거렸다. 

“아버지 어디 가시려고요?” “부산 가야지. 피난 안가면 다 죽는다.”

아버지는 내자와 내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힘없는 다리를 끌며 비틀거렸다. 금방이라서 쓰러질 듯 불안했다. 방을 나섰다. 피난을 가잔 거였다.

“아버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차가 와야지요.” “아직 차도 안 가져오고 뭐했나. 빨리 가야지.”

아버지는 그제야 자신의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심통이 나있었다. 전쟁이 터졌는데 느실대는 내가 싫었던 모양이다.

빨리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하는데 꾸물대고 있으니 답답했던 게다. 못마땅한 눈치가 선연했다. 눈가에 불만이 뚝뚝 떨어졌다. 입을 비죽 거렸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차가 오기로 했어요.” 그때 대문 밖에서 장정 한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건장한 체구에 어깨가 딱 벌어진 사람이었다. 

“어디 계시지요.” 그가 들어오며 물었다. “안방에 계신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벌써 그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르신 빨리 가셔야지요.” “그래. 왔구만. 빨리 가야지. 서둘게.” 아버지는 그길로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갔다. 지팡이를 겨우 짚고 찔룩 거렸다.

다리가 몹시 불편했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고 낯선 사람을 따라 나섰다. 그길로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부산으로 피난을 떠난 거다. 

아버지는 전쟁 중이었다.

매년 6월이 다가오면 병이 도졌다. 안방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에 엎드려 뒹굴었다. 수시로 망을 보고 문밖으로 총을 쏘았다.

“저기 봐. 저놈들이 몰려오는 걸 내가 모조리 해치웠어.” 아버지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핏발선 눈에서 불이 철철 흘렀다.

“온통 피바다야 피바다.”

진한 피비린내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렸다. 혀를 찼다. 본인이 쏜 총에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몸서리를 쳤다. 

살기 위해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처참하게 죽어있는 시신들이 흉측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에이 나쁜 놈들......”

아버지는 손으로 입을 쓰윽 문지르고 그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래도 눈에서는 많은 주검들이 어른거렸다. 
“칼을 준비해. 오늘 밤에 저놈들이 쳐들어 올 거야.” 아버지가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는 1924년생이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나이 스물에 결혼했다. 그리고 곧바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

그길로 일본 본토로 끌려가 죽음보다 고된 훈련을 받았다. 주어진 임무는 가미가제였다. 폭탄을 장착한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적 항공모함에 뛰어드는 죽음의 폭파 조였다.
 
훈련을 끝낸 아버지는 수일간 배에 실려 남양군도로 갔다. 그곳에 가미가제 부대의 기지가 있었다.  지금의 사이판과 티니안이다.
 
아버지는 그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냥 남양군도로 만 기억했다. 더위와 반복되는 고된 훈련 속에서 사탕수수밭을 누비며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1945년 8월 출격명령이 떨어졌다. 숱한 동료들이 사라진 뒤였다. 가미가제 부대에 남은 한국인 동료는 3명뿐이었다. 모두 폭탄과 함께 산화한 뒤였다.

독주를 마시고 폭탄이 장착된 경비행기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본토에서 급전이 타전됐다. 그것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었다.
 
아버지는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일본 본토로 돌아온 그는 귀국을 희망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패전한 일본은 징집병을 돌려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어 해를 그렇게 일본의 이름 모를 땅에서 지냈다. 퇴역을 위한 절차나 준비는 애초에 없었다. 제대라는 말도 몰랐다. 그냥 영내에서 궂은일을 하며 버텼다.

그러다 어느 비 오는 밤에 부대의 철조망을 넘었다. 탈영이었다. 필사의 탈출로 밀항하여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삶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고국에 돌아 온지 두어 해가 지난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갑작스런 북한군의 침공으로 조국은 쑥대밭이 되었다. 

아버지는 상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가 어떤 부대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른다. 평소 단 한 번도 군대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 부대에서 무슨 임무를 맡았는지 얘기한 적이 없었다.
 
다만 오래전에 뗀 국가기록원 자료에 한국전이 끝난 53년 병장 제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한국전에서 심각한 전투에 참가했고 험한 모습을 많이 봤던 모양이었다. 치매가 심화되면서 늘 그는 한국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밤마다 허공에 총을 쏘고 몸을 낮추고 육박전을 대비했다.  “박일병,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늦은 밤. 외로운 늑대처럼 울부짖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비통함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는 죽음의 공포에서 오늘도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아버지는 오늘도 그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2kwan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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