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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의장, 부민관 폭파 의거 75주년을 맞아 민족정신 되새기자

[서울=아시아뉴스통신] 김은해기자 송고시간 2020-07-25 09:14

서울시의회 김인호 의장, 서울시의회 본관 본회의장은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가 거행된 곳으로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장소에서 부민관 폭파 의거 75주년을 기념해 사진제공/서울시의회

[아시아뉴스통신=김은해 기자]서울특별시의회 김인호 의장은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 75주년을 기념해,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윤경로 위원장을 비롯해 독립운동가 후손 이항증(임정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 차영조(임정 비서장 동암 차리석 선생 후손),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선생 후손) 등을 당시 의거 현장인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 초청하고 의회시설 관람 및 면담시간을 가졌다.
 
현재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로 이용 중인 건물은 1935년에 세워진 경성부 부립극장으로 ‘경성부민관’으로 불렸으며, 각종 공연 및 집회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1945년 7월 24일 저녁, 친일파 거두인 박춘금이 조직한 대의당은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앞세워 태평양전쟁에 조선 청년들의 참여를 선동하기 위해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며, 이 자리에는 조선총독, 조선군사령관 및 친일파가 대거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항일투쟁의 기회를 엿보던 ‘대한애국청년당’ 소속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 당시 20세 안팎의 열혈청년들은 행사 소식을 입수하고 부민관 폭파 의거를 계획하였다. 다이너마이트로 사제폭탄 2개를 만들어 행사 전날 밤 대회장 뒤편 화장실 쪽에 설치하였고, 행사 당일 박춘금이 시국강연을 위해 등단한 뒤 얼마 뒤 폭파했다.
 
부민관 폭파 의거는 해방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시기에 거행된 항일투쟁으로, 해방 직전까지도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드높았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서울시의회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부민관 폭파 의거를 기리기 위해, 본관 건물에 해당 내용을 담은 홍보 공간을 마련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시의회가 항일투쟁의 현장임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김인호 의장은 이날 독립운동가 후손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민족은 큰 위기를 겪을 때마다 굳은 의지와 기개로 반드시 위기를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고 언급하며 “부민관 폭파 의거 75주년을 맞이해 우리의 민족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고, 지금 처한 위기를 의연하게 대응해나가는 서울시의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khh9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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