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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소를 알면 신축년(辛丑年)이 보인다(中)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1-02 07:00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아시아뉴스통신 DB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3. 소에 얽힌 이야기들
 
선산 문수산 아래에서 김기년이란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김기년을 위협했다. 이때 주인의 위급함을 목격한 소가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뿔을 앞세워 호랑이에게 돌진하였다. 피 튀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결국 호랑이가 소의 뿔에 받혀 주검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기년이 병들어 죽자 소도 따라 죽었다.

관부(官府)에서 죽은 소를 칭송하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이렇게 주인을 구하고 죽은 소의 무덤을 의우총(義牛塚)이라고 칭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겨 넣었다.
 
人亡牛斃 인망우폐 / 주인이 죽자 소도 죽었다
 
起年耕田 / 기년이 밭을 갈다
虎搏起年 / 호랑이가 기년에게 달려들다
虎搏起年 / 소가 호랑이를 들이받다
牛た躍觸其虎 / 소가 호랑이를 들이받다
虎釋起年而走 / 호랑이가 달아나다
人病牛役 / 기년은 병들어 누웠으나 소는 일을 계속하다
人亡牛斃 / 기년이 죽자 소도 따라 죽다
 
이 외에도 소에 관련한 고려시대의 이야기로 함경도 단천의 마천령을 다른 이름으로 이판령(伊板嶺)이라 부르는 유래가 있다. 그 시절 여진 사람들은 소를 '이판'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산 아래 동네 사람에게 송아지를 팔았는데, 어미 소가 송아지를 찾아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래서 소 주인이 소가 간 곳을 추적해 이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길이 생겨났다. 이 산 고개를 이판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또한 조선 후기 이야기로 한 노파가 소를 길렀는데 노파가 사망하니 소를 개령 지역 사람에게 팔았다. 그런데 팔려간 소가 옛 주인을 못 잊어 계속 울다가 노파의 장례 날에 우리를 뛰쳐나와 30리 길을 달려 노파의 장례 하는 곳에 와서 뒤뚱거리면서 울다가 얼마 후에 죽었다. 이에 동네 사람들이 관부에 보고하고 묻어 주었다. 그래서 선산에는 두 소의 무덤이 전한다는 전설이다.
 
뿐만 아니라 ‘황희 정승과 소’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불언장단’ (不言長短 :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음)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날의 황희가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들판을 지나다 잠시 쉬게 되었다. 들판에서는 노인이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던 황희가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장, 그 두 마리의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하오?"
그러자 농부는 밭가의 황희에게 가까이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당기더니 소가 들리지 않도록 귀에 대고 귀엣말을 하였다.
"누런 소가 검은 소보다는 훨씬 일을 잘 합니다"
"노인장, 어느 소가 일을 잘하던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라고 여기까지 와서 귀엣말을 하십니까?"
황희의 말을 들은 농부는
"젊은 선비, 모르는 말씀하지 마시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면 기분을 상하게 되는 것이오"
농부의 말을 들은 황희는 얼굴이 화끈했다. 비록 그 소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지금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잘한다, 못한다’ 하고 흉보는 일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저 노인은 비록 농사를 짓고 있으나 학덕이 높은 선비인 것 같구나. 오늘 나는 저 노인에게 아주 값진 교훈을 받았으니 평생 잊지 말아야지-
황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때부터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소 때문에 얻은 참으로 큰 교훈을 얻은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시인 백석의 ‘절간의 소’ 이야기가 유명하다.
 
시인 백석은 ‘점술황제님이신 지운선가님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의 병은 바로 근처에 치료약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멀리서 약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가 더 영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백석이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곁에서 치유할 수 있는 약이나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덕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덕을 쌓지 않고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실력을 쌓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을 쌓는 일이다. 덕을 쌓고 실력을 쌓으면 모든 세상의 일은 잘 풀리리라고 본다. 소가 인간보다 영하다는 말은 옛날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잡아 시인 백석은 시에 이렇게 소개하였다.
 
절간의 소 이야기/백석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소 풀을 뜯는 소가 인간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낳게 할 약(藥)있는 줄을 안다고
수양선(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칠십이 넘은 노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추었다 : 추슬렀다
 
위 시는 백석의 시 중에서 소라고 하는 동물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이다. 백석은 첫 시집의 중간 제목에 ‘얼럭소의 영각’이라는 표현을 달 정도로 소를 좋아했고 한다.

백석의 이런 모습은 화가 이중섭에게도 이어졌다. 백석과 친했던 이중섭이 백석의 시를 읽고 소에 관심을 잦았다는 것은 몽우화백의 말이기도 하다.

4. 화가와 시인의 소
 
천재 화가 이중섭을 흔히 ‘소의 화가’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중섭 작품 중심에는 우리네 자화상 같은 ‘소’가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소’의 모습 속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서글픈 역사, 작가 자신이 작품을 하면서 안아야 했던 고통과 슬픔, 평생을 그리워 한 고향에 대한 감회 등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소’. 그는 분노한 소를 통해 압박받는 민족의 모습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영하며 한 시대, 한 민족, 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굵고 힘찬 터치에서 날카로운 선묘에 이르기까지 소의 격렬한 동세를 단숨에 파악해 들어간 이중섭의 소. 그것은 소의 생태, 소의 해부학을 이해하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 한 것이었다. 특히 이중섭은 그의 작품에서 색보다는 선을 중요시 했다. 정확하고 힘차며 유연하고 경쾌한 선을 구사한 그의 표현력은 그림 속에 율동, 역동성의 생명력을 불어 넣기에 충분했다.

관념이 아닌 예리한 관찰의 결과로 돌진하고 있지만 비극적인 내면을 담고 있는 소의 표정을 읽어 나가는 이중섭의 소 그림은 그의 자화상인 동시에 민족의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중섭의 소에 관한 대표작품으로는 ‘싸우는 소’ ‘흰소’ ‘움직이는 흰소’ ‘소와 어린이’ ‘황소’ 등이 있다. 시인들은 이중섭과 소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소의 말/이중섭
 
맑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픈 것
아름답도다
 
두 눈 맑게 뜨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위 시는 천상 화가인 이중섭이 51년 피난지 서귀포의 방벽에 덕지덕지 써 붙여놓았다는 그의 유일한 시 '소의 말'이다. 그가 쓴 딱 한 편의 시다.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이 암송하여 전했다고 한다.

필자: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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