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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남원의 샘(4) 운봉읍 권포마을 참샘

[전북=아시아뉴스통신] 이두현기자 송고시간 2021-01-25 08:57

사각형, 깊이 100cm, 수위 70cm, 가로 189cm, 세로 189cm, 수온 17℃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1길 29-3. 권포마을 참샘./아시아뉴스통신=남원문화원 김현식

[아시아뉴스통신=이두현 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 권포마을은 고려 말부터 역사가 시작된다. 본래 운봉의 서면 지역으로 ‘굄피기’ 또는 ‘권포리’라 하였다. 권포마을 뒤 고남산(846m)에 제단을 하나 쌓았는데 정상이 마치 감투를 쓴 것처럼 보인다. 이 제단은 1379년(우왕 5년) 9월 동면 인월리에 집결하고 있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기도를 올린 곳이다.
 
고려말 우왕 6년(1380)에 이성계 장군이 승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기로 하고 고남산 고지에 천하대장군이라 쓴 방목 두 쌍을 만들어 동쪽과 서쪽에 한 쌍씩 세우고 돌을 다듬어 제단을 쌓고 몸소 제복을 입고 팔도산신을 불러 왜구의 섬멸과 필승을 기원하는 7일 기도를 올렸다. 이후 이성계 장군은 황산 싸움에서 아지발도를 사살하고 서울로 향하던 왜구의 사기를 꺾어 그 유명한 ‘황산대첩’을 이루었다.

현재 마을의 서편 200m지점 고남산 아래(동면)에 근거지를 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고남산에서 전승기도를 올릴 때 주둔한 병마의 식수로 쓰던 샘 주변에 성씨는 알 수 없으나 10여 호의 취락이 시작되었다. 그 후 고남산에 큰 산사태가 일어나 매몰되고 1500년경에 현 위치에 권 씨들이 터를 잡아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남산은 이성계 장군이 왕업을 이룬 것과 연관이 있다 하여 일명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 하였다. 제왕봉이라 하면 산의 제왕이 되므로 정도전(鄭道傳)이 이러한 자연 지형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을 이름을 권력을 편다는 의미를 상징해야 된다며 마을 이름을 ‘기세 권(捲)’자와 ‘펼 포(佈)’자를 써서 ‘권포(捲佈)’로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권 씨들이 널리 퍼져 권세를 누렸다는 의미로 ‘권세 권(權)’자와 ‘베 포(布)’자를 써서 ‘권포(權布)’라 하였다. 본래 이름은 굄피기였다.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 가동, 연동, 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권포리라 하고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운봉면이 운봉읍으로 승격되면서 운봉읍 권포리가 되었다. 법정리로서의 권포리는 행정구역으로 권포와 가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권포 마을회관을 지나 직진으로 약 1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참샘이 위치하고 있다. 이 샘을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왔다.
 
이 샘은 사각형으로 깊이 100cm, 수위 70cm, 가로 189cm, 세로 189cm, 수온 17℃이다. 지표면에서 약 70cm 깊이로 굴착하였는데 바닥은 암반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사각형 구조로 벽을 쌓고 지상부는 다듬은 장대석을 우물 정(井)자형으로 결구하였다.
 
결구된 석재가구 한 변의 길이는 200cm, 폭 100cm, 두께는 17cm 내외이며 지상부로 37cm가 노출되어 있다. 우물 앞쪽 석재 중앙에 사각형으로 수구를 뚫었는데 수량이 줄어들자 다시 아래쪽에 원형으로 수구를 설치하였다.
 
샘 주변은 자연석돌로 석축을 쌓고 일부는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바닥과 옹벽을 설치하였으며 우물 아래쪽에 허드랫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 귀틀 끝에 사각나무 기둥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얹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였다고 한다.(출처. 남원문화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dhlee3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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