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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교회 정이신 목사, '성령님의 나팔소리!'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6-27 04:00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1]
국어사전에 ‘재앙(災殃)’은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 재난(災難)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뜻풀이에 비춰보면 <요한계시록>의 심판 시리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징벌은 재앙보다 재난에 해당합니다. 이 책에 나온 일곱 심판 시리즈에는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인한 고난이 포함돼 있고, 이렇게 나타난 고난에 성도가 노출돼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불신자들의 잘못을 징벌하기 위한 것인데도 성도가 이 재난을 같이 받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초기에 예수님이 앞으로 끝날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태복음 24장). 따라서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책에 나온 심판을 재앙보다 재난으로 이해하는 게 낫습니다.

[2]
천사들이 침묵을 깨는 나팔을 불 준비를 했습니다(6절). 나팔심판은 독자를 일곱 봉인을 뗀 장면에 이어서 일곱 나팔을 부는 환상으로 초대합니다. <1ㆍ6절>을 보면 일곱 번째 봉인을 떼면서 일곱 봉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일곱 나팔심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일곱 번째 봉인을 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가를 세부적으로 자세히 다룬 게 첫 번째 나팔에서부터 일곱 번째 나팔심판까지의 기록입니다.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그 나팔은 다시 일곱 대접으로 나뉩니다. 요한이 이렇게 서술했기에 일곱 번째 봉인은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을 모두 포함한 심판입니다. 일곱 봉인을 다 뗀 후에 일곱 나팔이 울린 것처럼 보이지만, 일곱 봉인을 뗀 심판과 일곱 나팔심판, <16장>에 나온 일곱 대접이 쏟아 부어지는 심판은 동시적으로 일어난 심판입니다. 

[3]
<요한계시록>에서 세 개의 심판 시리즈는 시간별로 따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삼중으로 포개진 심판입니다. <6:8ㆍ13; 8:9∼10; 16:3>을 보면 이미 심판받은 생물이나 영역이 또 심판받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날 종말의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봉인ㆍ나팔ㆍ대접으로 겹치게 서술했습니다. 따라서 이걸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는 이런 서술을 통해 예수님의 강림에 관한 기록이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에 오도록 배열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곱 봉인과 일곱 나팔을 서로 대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이 둘을 비교해 보면 이후에 나온 일곱 대접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이로 인해 세 개의 심판 시리즈를 연결한 고리가 보입니다.

[4]
일곱 나팔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심판을 보여주며, 일곱 봉인과 다른 면에서 구원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먼저 일곱 봉인은 불신 세력 가운데서 고난을 겪으면서 인내하는 성도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은 <출애굽기>에 나온 이집트 왕 파라오처럼 성도에게 고통을 주며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를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해 아래 세상만 보고 삽니다. 저들에게 해 아래 세상은 저들만의 신(神)이며, 보호자입니다. 따라서 만일 땅이 흔들리면 저들이 믿는 모든 게 흔들립니다. <6∼13절>에 나타난 재난이 땅과 연관된, 땅을 흔들기 위해서 일어난 일인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일곱 봉인의 다른 면을 서술한 일곱 나팔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토록 의지하던 땅을, 불신자들이 기댔던 믿음의 근거지를 흔드셨습니다. 해 아래의 세상도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이걸 모릅니다. 저들이 그토록 기대고 믿던 의지처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 저들은 잘 모릅니다. 

[5]
<8∼9장>은 크리스천에게 해 아래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난을 우연으로만 해석하지 말하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외계의 별에서 온 사람인 것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보고 남의 일을 말하듯 툭툭 비수를 찌르는 언행을 일삼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난은 우연으로 포장된 이면에 필연이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 일어난 재난이 몇 사람만의 잘못으로 발생했고,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재난은 해 아래 세상만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징계 도구로 쓴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난을 통해 말씀하는 성령님의 메시지가 들립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남의 상처를 보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감의 능력은 철저하게 성경으로 훈련해야 만들어집니다. 이런 능력은 해 아래 세상에서 사는 동안 복음적 훈련을 통해 계속 키워가야 하는 크리스천의 성화 과정에 있는 과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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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훈련을 통해 재난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재난을 통해서 말씀하는 성령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겪을수록 더욱 마음이 굳어지고 강퍅해집니다. 일시적으로나마 겸손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짧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전보다 더 멀리합니다. 그러나 복음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겸손해집니다. 죄에 빠져 있더라도 고난을 겪으면서 회개하고 죄에서 빠져나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할수록 마음을 표독스럽고 완강하게 해서 주님과 더 멀어지는 것과 달리, 예수님의 제자들은 타인이 재난을 겪어도 그 재난으로 인한 상처를 공감하는 능력을 통해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더 겸손해져서 자기의 모든 걸 성령님께 맡깁니다. 이게 <8∼9장>의 나팔심판에 숨겨진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복음적 훈련을 통해 재난을 겪는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고, 그 안에서 성령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8∼9장>의 말씀은 사이비ㆍ이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저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괴한 심판으로만 읽힙니다. 만약 이렇게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인간의 사고를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7]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을 알리는 도구로 나온 나팔ㆍ대접은 히브리민족이 구약시대의 제사에서 흔히 썼던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던 날에도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출애굽기 19:16). 이스라엘 사람은 나팔 소리에 익숙했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나팔을 불어 이를 알렸습니다(레위기 25:9, 민수기 10:2). 전쟁이나 국가적인 위기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소집하기 위해, 해방과 기쁨의 날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요한 때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한 계시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나팔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긴급한 사건을 국민에게 알립니다.

[8]
구약성경에서 위엄 가득한 시내산의 율법 수여와 첫 출애굽이 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났던 것처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마지막 출애굽과 계시도 천사들이 부는 영적인 나팔 소리와 함께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요, 알파(Α)와 오메가(Ω)이시기에 처음과 끝을 주님이 허락하신 나팔 소리로 매듭지으셨습니다. 신광야에서 율법이 주어짐으로써 첫 출애굽이 완성됐던 것처럼, 예수님의 강림을 통해 드러날 마지막 출애굽도 천사들이 부는 영적인 나팔 소리와 함께 도래할 것입니다. 천사들이 부는 영적인 나팔 소리를 통해서 해 아래 세상만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하나님을 거부하는 무지하거나 악한 사람들에게 경고의 비상벨이 울릴 것입니다. 

[9]
천사들이 나팔을 불어 알리는, 하나님의 날이 도래했다는 소식은 악인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의인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내보이는 두려움과 기쁨이라는 두 가지 반응은 결과적으로 비상벨 소리를 듣고서 그것에 공감해 제대로 대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비상벨 소리를 들었더라도 이걸 듣고 어떻게 대피할 것인지 훈련받지 않으면 오히려 비상벨 소리로 인해 상황이 더 혼란해집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말세란 비상벨이 울렸을 때 주님의 구원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크리스천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21세기에 <요한계시록>을 읽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나팔 소리, 성령님이 울리는 비상벨 소리를 내가 듣는가, 못 듣는가?’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은 천사들이 부는 영적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으면서도, 재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메시지를 저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해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잡소리와 성령님이 울린 나팔소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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