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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담은옥합교회 안양준 목사, '노래 중에 노래!'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6-27 05:01

향유담은옥합교회 담임 안양준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3:1-5)

구약성경 아가(雅歌)를 영어성경은 ’song of song’이라고 부릅니다. 제목 자체가 ‘노래 중에 노래’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노래들이 있고,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지만 당당하게 ‘노래 중에 노래’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요?

아가서 1장 1절에 “솔로몬의 아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의 사랑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노래한 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백낙천이 쓴 장한가(長恨歌)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랑, 혹자는 나라를 말아먹은 사랑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정말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의 사랑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양귀비가 좋아했던 과일 여지(荔枝: 리치)를 신선한 상태로 공수하기 위해 사천에서 장안으로 통하는 수천 리 조공길을 만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도 마음을 울리지 않습니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시인의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만나 사랑이 싹트고 교통사고로 죽기까지 20년 동안 띄운 연서가 모두 5000여통이라고 하니 하루 한 번이 넘는 량(量)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시인이 쓴 ‘편지’라는 시의 앞구절로 이를 모를 이는 거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지만 구약성경의 모든 내용이 신약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예표이듯 이 역시 신랑되시는 주님과 신부인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본문에 여인은 상대를 향해 ‘마음에 사랑하는 자’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짧은 본문에 네 번씩이나 반복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건 빼박입니다. 다른 건 다 속여도 마음을 속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는 잘 알지 못합니다. 밤 중에도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때부터 조바심으로 성중을 돌아다닙니다. 거리에나 큰 길에 나가 찾아도 만나질 못합니다. 그래서 행인들을 만나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고 묻습니다.

애타는 심정으로 찾아다니다가 사랑하는 자를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를 붙잡고 자신의 집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자신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 것을 선포합니다.

얼마 전 글에 “성경에 가장 중심되는 주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가장 중심되는 주제는 ‘관계 회복’이라는 자문자답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시는 까닭입니다. 최소한 관계 회복은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믿기만 하면 –이것이 관계 회복의 제일 조건입니다-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들, 믿음·소망·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런 사랑의 관계가 되어지길 원하시는 까닭입니다. 정말 마음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마음에 사랑하는 자입니까? 밤중이 아니라 한낮에도 잃은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마음은 아무도 모르니까 제가 판단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아니라 세상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개인주의자들...

마지막 때의 현상이니 당연히 이러한 자들이 넘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혹시 잃었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 나서는 자들...

3000년이 지난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사랑을 통해 내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면?

저는 감성영역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탓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나같은 자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온전히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동케 하시는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아가서가 '노래 중에 노래'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들려주시는 사랑의 노래인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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