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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두 가지 죽음의 사건
두 가지의 사건이 그 당시 백성들의 감정을 자극했는데 하나는 갈릴리 사람들의 끔직한 죽음입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살해를 당한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지배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저항을 하거나 아니면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빌라도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1절,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그 사건의 진실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문장으로만 이해하면 빌라도가 그들을 죽이고 유대인들이 드린 제물의 피와 섞었다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말씀을 직역하면,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거기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께 빌라도가 희생제물을 바치던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말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빌라도의 끔직한 살인을 더 확대하는 표현이지만 원어는 그들의 죽음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충실히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그 죽음을 말하는 자들은 그들의 죽음이 은밀한 죄를 지었거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거나, 무엇인가 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실로암은 예수님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실 때, 그의 눈을 실로암에서 씻도록 하셨던 장소입니다. 실로암은 연못이 아니고 수로입니다. 히스기야는 시리아의 침입에 대비하여 지하수로를 만들었는데, 그 성안의 수로의 끝이 실로암이었습니다.
그곳에 세운 망대가 무너졌습니다. 왜 망대가 무너졌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연재해인지 아니면 부실 공사인지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열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그 당시 사람들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죽은 정치적인 죽음이든 자연재해이든 부조리함으로 당한 인재이든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죽음을 시대의 정신,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해했습니다. 종말의 결과는 죄의 심판, 죽음입니다. 이 관점은 여전히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사고이든 자연재해이든 죽음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죽음의 사람들을 죄의 결과로, 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정이나 긍휼의 마음은 이차적인 감정이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늘 심판자의 입장 또는 늘 선악의 마지막 결론을 짓는 결정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은 자들의 섣부른 결론입니다. 분별을 심판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누가복음 13장 1-9절, 시편 80편 8-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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