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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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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은 <3∼4절>과 조화를 이룹니다. “고요”는 천사가 성도의 기도(찬양)와 함께 제단에 향을 피우는 동안 있었던 사건입니다. 요한은 이 고요를 통해 다음에 있을 사건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고요한 순간을 통해 다음에 등장하는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불었던 사건을 부각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하나님이 해 아래 세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성도의 기도(찬양)와 함께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은 주로 회사의 중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모여서 결정합니다. 이처럼 해 아래 세상에 드러날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은 성도의 노력을 참고하시고, 이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십니다. 이는 국가의 중대사를 국무회의를 통해 의논하지만,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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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랍비의 전승에 따르면 천사들이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 밤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낮에는 잠잠히 있습니다. 이 동안에는 하나님이 천사들을 침묵하게 하심으로써 땅에서 올린 주님 백성의 기도(찬양)를 하늘나라에서 들으십니다(시편 42:8). 요한은 유대교 랍비 전승을 이용해, 하늘나라에 있는 존재들이 부르는 찬양이 갑자기 조용해진 이유가 땅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성도의 기도(찬양)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들려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그는 하늘이 “약 반 시간 동안 고요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의 찬양까지 멈추게 하고 하나님이 직접 성도의 기도(찬양)를 들으시는 극적인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천사들이 찬양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십자가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는 성도의 기도(찬양)를 듣지 못하실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기도(찬양)가 주님께 제대로 들려지도록 하늘나라를 잠시나마 조용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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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여호수아기 10:12>의 사건이 지닌 신학적 의미와 같습니다.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에서 “머물러라”는 히브리어로 ‘다맘’인데, ‘벙어리처럼 돼라, 조용하다, 잠잠히 침묵을 지키다’란 뜻입니다. 해ㆍ달이 인간처럼 귀와 입이 있는 게 아닌데, 갑자기 여호수아가 해ㆍ달에게 ‘벙어리처럼 돼다, 조용히 해라, 잠잠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에 해ㆍ달을 인격적 존재를 넘어서 신적 존재로 봤기에 나온 표현입니다. 중동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에서 해ㆍ달은 천체가 아니라 신(神)이었습니다(열왕기하 21:3). 예를 들어 이집트의 왕은 인간의 몸에 매의 얼굴을 가진 태양신 ‘라(Ra)’의 현현이었고, 때론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도 해ㆍ달을 살아있는 신적 존재로 보고, 그들에게 ‘조용히 해라, 잠잠히 있어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하늘의 해ㆍ달을 조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해ㆍ달에 하는 제사의 시끄러운 소리를 멈추게 하시고,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민족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게 <여호수아 10:12>의 신학적 의미입니다. 우상들이 내는 잡스럽고 시끄러운 소리를 조용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오직 여호수아의 기도만을 들으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온갖 번잡스러운 소리 속에서도 하나님은 정확히 성도의 기도(찬양)를 들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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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시점에서 성도의 기도(찬양)가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이는 일곱 번째 봉인이 역사의 정점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5절>에서 성도의 기도(찬양)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이 때문에 역사의 정점에서 성도의 기도(찬양)가 들리도록 하늘은 침묵했으며, 이 기도(찬양)에 대한 응답으로 마지막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찬양)에 귀를 기울이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을 성도의 기도(찬양)와 무관하게 진행하지 않으십니다. <6:10∼11>에서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마지막 심판이 언제 있느냐고 물었듯이, 주님은 마지막 심판을 진행하실 때 반드시 성도의 기도(찬양)를 고려하십니다. 우리가 기도(찬양)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행동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해 아래 세상의 흐름에 대해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더 많이 뛰어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의 고용인이나 노예가 아니기에, 성령님은 성도가 해 아래 세상의 주인다운 의식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찬양)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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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에서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는데 이 향은 성도의 기도(찬양)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앞 금제단에 드려졌습니다. 이 말씀이 표현상으로는 구약성경에 나온 제사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본질에서는 구약성경과 다릅니다. 구약시대와 비교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서는 동물을 잡아 드리는 제사도 없이 성도의 기도가 직접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 인해 새롭게 제시된 놀라운 의식을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4절>을 보면 천사가 성도의 기도(찬양)를 하나님께 전달하지 않습니다. 천사는 향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만 했고, 성도의 기도(찬양)는 직접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성도의 기도(찬양)가 하나님과 연결된 직통전화임 셈입니다. 천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은 이 기도(찬양)가 잘 전달되도록 돕는 촉매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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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5:8>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24장로가 성도의 기도를 담은 금대접을 갖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5:8>에서는 향이 곧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3∼4절>에서는 향이 금대접에 담겨 있지 않고 천사에게 주어진 향로에 담겨 있고, 이게 천사로부터 나와서 성도의 기도(찬양)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앞 금제단에 드려졌습니다. 이 장면에 관한 서술은 구약시대의 희생 제사를 배경으로 했기에 금향로, 제단, 향, 제단 불 등과 같이 구약시대의 제사 때 썼던 성전 기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5:8>에서는 천사로부터 향의 연기와 함께 올라간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던 24장로가 갖고 있던 금대접에 혼합돼 담겼습니다. 그러므로 <3∼4절>은 <5:8>을 자세히 설명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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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찬양)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졌던 향이 담긴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았더니, 천둥ㆍ요란한 소리ㆍ번개ㆍ지진과 같은 종말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5절). <6:10>에서 순교자들이 언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냐고 물었는데, 이에 대한 답이 땅에서 고난받는 성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기도(찬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진행된 건 <이사야서>에 전형이 나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보고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이사야서 64:11∼12). 그리고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이사야서 6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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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에 나온 다섯 번째 봉인이 하늘나라의 성전에 있는 순교자들의 기도였다면, <8:1>의 일곱 번째 봉인은 모든 성도의 기도(찬양)입니다. 순교자들의 기도든 모든 성도의 기도(찬양)든 예수님을 통한 기도(찬양)는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역사에서 예수님에 대한 증언으로 고난받은 성도의 기도는 성령님이 구속 사역을 이뤄가는데 중요한 동인입니다. 초대교회가 핍박받고 있는 영적 전쟁에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초대교회의 성도 중 일부가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순교자들의 기도와 성도의 기도(찬양)가 하나님께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은 의인의 기도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는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초대교회 성도에게 커다란 위로와 감격을 제공해줬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부분을 세밀하게 기술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5절>에 나온 종말적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겪은 고난에 대한 보상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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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성도가 드린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려줍니다. 성도가 드린 기도는 단순히 애원하는 넋두리가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기뻐하며 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런데 성도 중에 특별히 기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부르짖고 기도하지만, 성령님이 기도의 은사를 주셨기에 어떤 사람은 기도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성령님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는데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기도처럼 때로는 이들의 중보기도로 하나님의 공동체가 제 갈 길을 갑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게 사명인 성도는 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의 기도(찬양)를 듣기 위해 천사의 찬양까지 잠시 쉬게 하신 하나님을 믿고 뜨겁게 기도(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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