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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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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서 아비소스는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이 잠정적으로 거주하는 처소 또는 저들이 갇힌 곳입니다(9:1∼2ㆍ11; 11:7; 17:8; 20:1ㆍ3). 그러므로 아비소스에서 나온 메뚜기 떼는 사탄의 하수인들이고, 저것들에 의한 재난은 흑암의 세력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란 속성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해하는 것까지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9:5). 생명에 관한 모든 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기에 주님이 이걸 다른 존재와 나누신 적이 없습니다. 또 이 말씀은 <7:1∼8>에서 하나님의 종들 이마에 도장이 찍혔을 때 이들이 주님의 심판으로부터 보호받는 걸 연상시킵니다. 욥처럼 하나님의 도장을 이마에 맞은 사람, 주님의 백성은 주님의 허락도 없이 메뚜기 떼가 괴롭힐 수 없습니다(욥기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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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절>에는 메뚜기 떼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이런 생물이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문자적 의미보다 요한이 이를 통해 말하려고 했던 상징적 의미를 살피는 게 낫습니다. 첫째, “전투 채비를 한 말들과 같다”라는 건(7절) 메뚜기 떼에게 나름대로 질서와 규율이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머리에는 금 면류관과 같은 것을 쓰고,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같다”라는 건 저들이 조직을 갖춘 범죄 집단이란 뜻입니다. 자연계에서 메뚜기 떼는 따로 왕이 없는데, 저들은 나름대로 조직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셋째,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은 사람들이 보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단 뜻입니다(8절). 이는 일종의 선전 효과를 말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저들이 아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넷째, “사자의 이빨과 같다”라는 건 저들이 한번 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단 뜻입니다. 우리말에서 사람의 치아는 이, 동물의 치아는 이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사자의 이빨”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섯째, “쇠로 된 가슴막이와 같은 가슴막이”를 둘렀다는 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어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그 날갯소리는 마치 전쟁터로 내닫는 많은 말이 끄는 병거 소리와 같았다”라는 건 이게 세상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9절). 일곱째, “전갈과 같은 꼬리와 침을 가졌다”라는 건 저들에 쏘인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는 뜻입니다(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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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에서 메뚜기 떼가 저들의 왕으로 삼은 ‘아볼루온’은 ‘파괴하다’란 뜻을 지닌 아폴루미 동사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여기서 후대 그리스로마신화의 아폴로신과 동일시되는 아폴론이란 이름이 나왔습니다. 아폴론신을 숭배하는 곳에서는 메뚜기ㆍ쥐ㆍ도마뱀을 신의 상징물로 사용했습니다. <2:28>을 강독하면서 금성이 통치의 상징이었기에 로마 황제들이 비너스 여신으로부터 자신들이 출생했다고 주장했고, 로마 장군들은 이 별에 봉헌하는 신전을 짓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달리 로마 황제 중 폭군이면서 기독교 박해자로 유명한 칼리굴라와 네로는 비너스가 아닌 아폴론의 신성을 그들이 가졌다고 했고, 도미티아누스는 그를 아폴론이 성육신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했을 때 이 말씀은 당시에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들이 숭상했던 신들의 상징물을 하나님이 허락한 사탄의 도구라고 요한이 말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메뚜기 떼가 하나님의 주관권을 떠나 어디를 함부로 가겠습니까? 환난 기간이 열흘인 것처럼(2:10) 저들의 권세는 다섯 달 동안만 주어집니다. 여기에 크리스천의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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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강 유프라테스는(14절) 이라크를 중심으로 중동을 흐르는 강으로, 동양(아시아)과 서양(유럽)을 나누는 강인데, 이 강이 로마제국의 동부전선을 형성했습니다. 여섯 번째 나팔을 불었을 때 유프라테스강에 매여 있던 네 천사가 놓임을 받았는데, 그들은 “그 해, 그 달, 그 날, 그 때에 맞춰 사람의 1/3을 죽이기로 예비 된” 존재입니다. 천사의 나팔 소리에 응답해서 금제단 네 뿔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금제단은 일곱 번째 봉인을 뗄 때 등장했는데(8:3∼5), 그때 금제단은 성도의 기도가 향연과 함께 드려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9장>에 나온 금제단 네 뿔에서 나온 음성도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요한은 여섯째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한 둘째 재난을 성도의 기도와 연관시켰습니다(6:10; 8:4∼5; 9:13∼14). 그는 이때 ‘해ㆍ달ㆍ날ㆍ때’의 구체적인 시점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게 이뤄진다고 했습니다(15절). 유프라테스강에 매인 네 천사의 수하에 2억의 기마대가 있는데(16절), 저들의 모습과 저들이 쓴 무기는 그때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기병대의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17∼18절). 당시에 이런 무기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무기에 관한 서술을 통해 이 책을 읽고 듣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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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인가?’라고 묻기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특징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전까지의 전쟁은 주로 무력을 사용한 전쟁이었습니다. 힘센 쪽이 이기면 진 쪽은 노예로 팔려 가거나 속국이 돼 조공을 바치는 게 일반적인 전쟁 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쟁은 사상까지 겸하는 전쟁일 가능성이 큽니다. <19절>에서 “꼬리에 머리가 달려있어서, 그 머리로 사람을 해쳤다”라는 표현이 꼬리를 통해 사람의 정신을 바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적인 지배는 무력에 의한 지배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줍니다. 1ㆍ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의 지성적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면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무력행사뿐 아니라 정신까지 침해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전쟁이 21세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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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천사는 왜 유프라테스강에 결박돼 있었을까요?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유프라테스강이 낳은 문명이 바빌로니아 문명으로, 이건 이집트 문명과 함께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그 문명은 악의 화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원수의 상징으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었습니다. 요한은 유대인이기에 자신이 아는 이미지를 써서 네 천사가 유프라테스강에 매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요한계시록>에서 유프라테스강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영역과 악의 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영역의 경계선이 됩니다(16:12). 베드로도 로마를 바빌론이라고 했는데(베드로전서 5:13), 이는 그가 로마제국이 유프라테스강이 낳은 악의 화신과 같은 존재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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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ㆍ여섯 번째 나팔에서 사탄은 자기가 괴롭힐 수 있도록 하나님께 허락받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사탄에게 괴롭힘을 받는다고 말한 곳은 성경에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은 심판 때도 철저하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탄에게 괴롭힘을 받는 건 심판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증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증언 사역을 감당하다가 크리스천이 고난을 겪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도가 받는 의의 고난은 이걸 통해 하나님이 사탄을 심판하는 수단이 되고, 크리스천의 특권이 됩니다(빌립보서 1:29). 사탄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계속 자신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힙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할 때 이점을 이용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사건이 일어납니다. 만약 하나님이 네 천사를 유프라테스강에 묶어두지 않으시면, 사탄이 아무 때나 저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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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나팔로 말미암은 재난에 관해 <20∼21절>은 보충 설명을 합니다. 이런 극심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귀신들에게 의지했습니다. 생명이 없기에 보거나 듣거나 걸어 다니지 못하는 금ㆍ은ㆍ구리ㆍ돌ㆍ나무로 만든 우상들에게 저들은 절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또한 저들이 저질렀던 살인ㆍ복술ㆍ음행ㆍ도둑질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들은 이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회개는 성령님의 은혜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11:18).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회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의 날인을 받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요한복음 16:8). 그런데 저들에게는 성령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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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 나온 재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심판만을 말하지 않고, 성도에게 회개의 은혜를 사모하게끔 인도하는 성령님의 역사를 같이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20∼21절>은 회개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성경에서 말한 기적을 볼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이 보여주는 마술만 볼뿐이고 하나님이 주신 기적을 볼 수 없습니다. 회개의 은혜를 통해 자신 안에 담겨 있는 아담ㆍ하와의 속성을 이겨내기 위한 믿음을 얻지 않으면 창조세계의 경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게 <9장>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읽는 초대ㆍ초기교회 성도에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끝이 있지만, 회개한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이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견뎌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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