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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일탈의 후예들
자신의 고향에 머물며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농부가 있었다. 그렇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마침 그 마을을 지나가던 한 장사꾼이 그 농부에게 하룻밤을 유숙하게 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 농부는 쾌히 허락을 하고 그날 밤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서로 많은 이야기로 금세 가까워졌는데 그 장사꾼이 순박한 농부에게 바람을 넣었다. "이 보시게나, 언제까지 이렇게 사방이 꽉 막힌 산골짜기에서 땅만 파고 있을 텐가?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있네, 사람들은 그것을 보석 중에 보석이라고들 부른다네, 자네가 그것을 가질 수만 있다면 평생 아무 일 안 해도 떵떵거리며 살 수가 있다네."
눈이 휘둥그레진 농부는 귀가 솔깃하여 그 장사꾼에게 바짝 다가서며 재촉하듯이 물었다. "아니 그런 다이아몬드를 어디 가면 구할 수가 있소?". "그야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찾아 캐내기만 하면 된다네."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즉시로 논과 밭을 팔고 가족들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고는 길을 떠났다.
이 농부는 순식간에 많은 돈을 얻고자 온 나라를 뒤지고 다녔으며 외국에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이아몬드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준비해 갔던 모든 자금을 제다 탕진하고 다이아몬드는커녕 지친 육신에 몹쓸 병만 얻게 된 농부는 자괴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그만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고 말았다.
무심한 세월이 흘렀고 그 농부를 가족들과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갈 무렵, 그 농부가 팔았던 땅을 산 사람이 밭을 갈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큰 돌덩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마을 사람들과 주변 고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 혀를 차며 아쉬움을 금하지 못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다이아몬드 원광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다이아몬드 원광석은 나라님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정부에서 매입하게 되었고 일부는 임금님의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되어 임금님의 위엄을 상징하는 일에 한몫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그 농부가 죽기까지 찾아 헤맸던 곳이 아니라 정작 동전 몇 닢에 팔아버린 자신의 밭에 묻혀 있었으니 말이다. 지나친 욕심이 달콤한 유혹에 이끌리면서 다이아몬드 원광석이 묻혀 있었던 밭도 사랑하는 가족도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서 지혜로운 농부는 지주의 밭을 소작하다 보화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밭에 묻어 놓고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마련하여 그 밭 주인에게 가서 정당한 땅값을 지불하고 매입한다고 했다. 또한 떠돌이 장사꾼이 가치 있는 물건이나 보화를 시장에서 발견했을 때도 그렇게 한다고 했다(마 13:44~45).
물론 위 이야기의 경우에 그 농부는 자신의 밭에 다이아몬드 원광석이 묻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밭을 산 사람도 알지 못하고 매매 행위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만약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사 32: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편 기자를 통해서도 "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과 그 본질을 "존귀"로 시사하셨다.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라고 인간의 처세술의 준거를 분명히 하셨다. 사람의 내면을 거울로 보듯 들여다볼 수 있는 준거가 그 사람의 입술에서 표현되는 언어에 있다는 점을 역설하신다.
이 같은 주님의 역설은 존재론적으로 존귀한 인생에게서 존귀한 계획을 기대할 수 있으나 존귀하게 지음 받은 자아를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서는 오히려 멸망하는 짐승에 준하는 계획이 표출될 뿐임을 낙인찍으신다. 결국 다이아몬드에 대한 탐욕이 자신의 소유에 있는 진짜 다이아몬드를 볼 수도 가질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그 무엇보다 그 농부에게 있어 진정한 다이아몬드는 그 밭에 묻혀 있었던 다이아몬드 원광석이 아니라 씨를 뿌리고 땀 흘려 가꿀 수 있는 건강한 농부의 자리였던 것이다. 우리 인생에게 기경(起耕)할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이었고 축복이었다(창 2장). 여기에 욕심을 더하므로 비롯된 결과가 타락이었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
그렇다. 오늘의 교훈은 그대의 현재와 현실의 가치를 고등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남의 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것은 그대의 소유가 아니며 그대 안에 있는 고등한 가치의 목록에 등재될 수 없다. 진귀한 다이아몬드 같은 보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해도 그대에게는 보물일 수 없다.
뺏고 뺏기는 현대 사회의 안목에서는 과거에 농담 삼아 즐겨 사용했던 "네 것이 내것이고 내것이 내것이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실제로 먹혀 들어가는 기막힌 세상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까닭에 현실적으로 무한한 도전과 발전을 모티브로 하는 투자 경쟁 시대에서는 농부에게 다이아몬드 채광을 제안한 한 장사꾼의 논리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이 지상에 우리 인생이 설자리가 없어져 간다는 위기의식이 옥조여 오고 있음에 대해서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결코 문화 창달의 성경적 명령이 지구촌의 현재와 같은 양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아담의 범죄 이전 벌거숭이로 부끄러움 없이 살았던 에덴의 낙원 생활을 동경한다.
탐욕과 탐심이 만들어낸 세계관을 미화시키지는 말자. 종신토록 땀을 흘리며 수고의 떡과 물을 마심이 인생이라는 노동과 죄책의 가치에 도전하는 역사관은 가인의 후예들에게서 발견되는 대목이다(창 4장).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물론 온 지구촌이 그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그대의 역사관도 세계관도 가치관도 오늘 그대가 선 자리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인생 안에서 그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대상관계에 조명해 보자. 베드로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에게 줄 수 있었던 것 말이다. 당시 베드로에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능력 밖엔 달리 가진 것이 없었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고 걷고 뛸 수 있게 했음을 기억하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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