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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영원한 두 증인(요한계시록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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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탄생 과정을 기록한 <마태복음ㆍ사도행전>과 달리 교회가 어떤 힘을 지녔는지 설명한 곳이 <11장>인데, 여기서 <1∼13절>은 삽입구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몸통에 해당하는 일곱 심판 시리즈에서는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보다 때로 그 중간에 있는 광고 같은 삽입구가 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10:9∼11>에서 예언 사역을 위탁받은 후 <1∼2절>에서 성전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3∼13절>에서 두 증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세 개의 이야기는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여기에 나온 예언 사역의 위탁과 성전 측량은 <에스겔서>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그는 독창적인 걸 고안해 그가 본 환상을 기록하지 않았고, 유대 묵시문학의 상징을 많이 사용해 그가 본 걸 수사학적으로 기술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11장>은 초대ㆍ초기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미움받고 압제당했던 때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2]
<2절>은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재건축한 예루살렘성전과 <다니엘서 8:11∼14; 12:7>을 배경으로 합니다. 솔로몬이 지었던 예루살렘성전은 안뜰과 바깥 뜰로 구분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때 재건축된 예루살렘성전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 때와 달리 유다에 비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기에 성전에도 이런 구분이 생겼습니다. 먼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비유대인의 뜰이 나오고, 이 뜰을 가로질러 가면 낮은 담이 있는 여인의 뜰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여자 유대인은 비유대인 남자보다 조금 나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다음이 남자의 뜰이었고,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게 제사장의 뜰이었습니다. 제사장의 뜰은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레위지파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놋으로 만든 번제단이 있었고, 제비를 뽑아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단이 있었습니다.
[3]
요한은 <다니엘서 8:11∼14>을 <다니엘서 12:7>에서 “거룩한 백성이 받는 핍박이 끝날 때”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했고, 이걸 <1∼2절>에 반영했습니다. 그래서 <2절>을 직역하면 “성전 밖의 마당을 밖으로 던져 버리고”가 됩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를 포함하는 것으로, 성전 건물 밖 마당을 포함하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니엘서 8:11>에서 성전을 파괴했다는 표현을 성전 밖에 있는 마당을 그냥 두라는 의미로 인용했습니다. “그냥 두라”는 문자적으로 던져 버리라는 의미인데, 그는 <다니엘서>를 인용하면서 성전 밖 마당이 밖으로 던져진 건 비유대인의 나라들이 그걸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다니엘서 8:11; 11:31; 12:11). 그리고 <다니엘서 8:13>에 있는 천사의 물음을 “이방 사람에게 내줬다”와 “짓밟을 것”이란 말로 해석해 인용했습니다. <스가랴서 12:3>도 <1∼2절>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누가복음 21:24>을 기초로 해서 이 둘을 통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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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2절>은 주후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성전의 파괴를 반영했습니다. 요한이 <1:7>을 <다니엘서 7:13, 스가랴서 12:10>을 합성해 인용한 것처럼 <1∼2절>도 <다니엘서 8:11∼14, 스가랴서 12:3>을 연결해 인용했습니다. 성전과 거룩한 도성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곳으로 이곳이 짓밟히는 건 교회의 성도가 짓밟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이를 <다니엘서>의 표현을 빌려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개역개정성경)”, “거룩한 백성이 받는 핍박이 끝나는 것(새번역성경)”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가 예수님처럼 구약성경에 예정된 것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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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기자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해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했는데, 복음서에 깊숙하게 뿌리박힌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상징 세계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온 표현을 직접 사용한 ‘인용’, 구약성경에 나온 표현을 통해 연관성을 발견하게끔 신호를 보낸 ‘암시ㆍ인유(引喩)’, 구약성경에 나온 하나의 단어나 구를 통해 특정한 걸 연상하도록 이끈 ‘반향ㆍ울림ㆍ메아리(echoes)’입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구약성경을 그대로, 무작정, 아무 생각 없이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말씀을 전하려고 한 신앙 공동체의 상황을 먼저 파악했고, 예수님의 사역에 비춰 구약성경을 거꾸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읽어도 때론 구약성경이 떠오르게 했고, 구약성경을 넘어선 이야기를 그들이 한 구약성경에 대한 신약성경의 해석을 통해 말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이런 장치를 통해 신약성경 기자들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하나로 이어붙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경전에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이 들어간 것입니다. 요한도 이를 따랐는데,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성도가 예수님 안에서 구약성경을 넘어선 구원 역사의 종말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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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구약성경을 인용한 방식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에서 그가 측량한 이유가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측량은 새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 혹은 오래된 건물을 파괴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스가랴서 2:1∼2>을 인용한 <1∼2절>에서는 이와 달리 건물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측량했습니다. 기념할 만한 건물이나 보존할 만한 수목 주위를 측량해서 한계를 설정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듯이, 그는 갈대 측량자를 들고 성전과 제단, 그리고 그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측량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그분의 희생으로 값을 치르고 산 교회의 일부분이기에 하나님께 이들을 보호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측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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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서 요한은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을 셌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첫 번째 기능이 뭔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교회의 첫 번째 기능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화롭게 하는 게 예배의 핵심입니다. 또 교회에서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는 일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는 <1절>에 예배하는 공동체, <3절> 이후에 예언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기술했습니다. 이렇게 기술함으로써 그는 예배가 복음에 대한 증언보다 앞선 교회의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의 몰이해로 성도가 박해와 순교의 시기를 겪게 되겠지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는 영원히 보존됩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을 먼저 세었습니다.
[8]
‘3년 반(42달)’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2절) 이스라엘 백성이 곧바로 떠올리는 사건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중간기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Antiochus Epiphanes Ⅳ)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에서 드린 제사를 금지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Zeus)의 신단까지 세웠습니다(주전 166∼163년). 그는 괴팍하고 불안정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을 에피파네스(Epiphanesㆍ現神王)라고 했는데, 너무 난폭한 통치를 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미친놈이란 뜻의 에퓨마네스(Epumanes)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성전을 유대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곳으로 활용했고, 유대인 유다 마카베오가 그에게 저항해 난을 일으킨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통치할 때 유대인에게 선포한 법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앞으로 유대인은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라. ②예루살렘성전에서 번제ㆍ희생제물을 드리지 말고, 술을 봉헌하는 등의 예식을 하지 마라. ③구약성경에서 정한 안식일과 기타 축일을 지키지 마라. ④성전과 성직자를 모두 모독해라. ⑤유대교가 아닌 비유대교의 제단과 성전, 신당을 세워라. ⑥돼지와 구약성경에서 부정한 동물로 지정한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쳐라(그는 유대인에게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였습니다). ⑦유대인으로 태어난 사내아이에게 할례를 주지 마라. ⑧온갖 종류의 음란과 신성 모독의 행위로 자신을 더럽혀라. ⑨유대인의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꿔라. ⑩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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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유대인에게 강제로 지키라고 했던 명령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유대인은 이 3년 반의 기간을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상실했던 악몽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반복적으로 예언한 종말적 환난 기간을 상징화한 이 숫자를 그들이 겪었던 일을 토대로 여러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을 개개인의 상황에 적용해 해석한 유대교의 성경주석 방법과 내용을 담은《미드라시(Midrash)》는 이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게 될 일반적인 환난의 시간이라고 했고,《산헤드린》은 이걸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기간 또는 이스라엘이 마지막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고난의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이런 유대 묵시문학의 코드를 사용해 성도에게 겪어야 할 고난의 시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42달, 1260일이기에(2∼3절), <요한계시록>에서는 신약성경의 기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한 세 가지 방법을 토대로 이걸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 35년을 숫자와 무관하게 치욕을 겪은 기간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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