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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절)
''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솔로몬은 지혜에 지혜를 학식에 학식을 명철에 명철을 총명에 총명을 더하라며 금 쪽보다 더 귀한 잠언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었답니다. 급진적으로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전치기 인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심장에 옥조여 올 때가 많답니다. 언제나 역부족이라는 마이너스 인생 현장에 짓눌려 아등바등 발버둥 치면서 겨우 버텨온 뒷모습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황혼의 저문 해가 되어버렸음에도 여전히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궐기는 플러스 인생을 촉구하고 있답니다. 시편에 등장하는 시인들의 궐기 같은 외침은 황혼을 청청한 잎사귀와 번성을 상징하는 종려나무와 발육하는 백향목같이되라는 주문으로 일관함은 당연지사라 하네요.
오늘은 잠언의 솔로몬과 시편의 시인들이 촉구하는 외침 앞에 엉거주춤 애써 몸을 가눌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서 보렵니다. 그리고 천부 앞에 의지 없어 두 손들고 나아온 죄인의 무거운 어깨와 등짐이지만 날 대신 지신 주님의 그 무거운 십자가 위에 무조건 내려놓습니다. 대책 없는 노인 내라 비난할지라도 어쩔 수 없네요. 주님 아시지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어제의 묵상 말씀에 이어 빛의 자녀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로의 재림을 대망하며 종말론적 경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으나 주께서 짊어지신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생명으로 우리를 견고한 반석에 세우신 것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룸에 있음을 권고하는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아바 아버지 앞에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부과된 특권이며, 양자 된 자의 상속권인 것입니다. 곧 후사 개념의 실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0절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은유적으로 주님의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살아 있는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부활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 데 있음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 권고의 메시지는 서로 위로함으로써 용기를 북돋아 주되, 마치 건축자가 집을 견고하게 짓듯이 튼튼한 신앙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서로 도우라는 권고요 부탁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나 오늘의 지상 교회 성도들이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평안하다. 안전하다" 등의 구호로 영적 무감각 상태에 전락하고 만다면 그 결과는 도적같이 오시는 재림을 맞을 뿐입니다.
교회나 성도의 부단한 성장을 위한 노력은 절대적입니다. 이미 준비된 자에게는 재림의 시기가 언제일지라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기에 도적같이 오실 수가 없습니다.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사도 요한이 마라나타의 신앙을 넘겨준 바통 이어받아 피차 간에 세워주는 조력자로 최선을 다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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