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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종종 와이셔스를 입다가 단추를 풀러야 할 때가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있어 첫 단추는 무엇일까?
믿는 사람에게는 사도 신경 신앙 고백의 첫 대목이 아닐까 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옵고." 이 신앙 고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안다면, 사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을 잘 돌보도록 사명을 받은 것, 둘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사명"과 "사귐"을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위기는 이 두 단어를 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는 목적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곧, 존재의 이유를 잃어 버린 삶이 될 것이다. 스스로 정한 목적을 위해 살다가, 언젠가 하나님의 소환을 받고 떠나 간다. 그 앞에 가서 무엇을 말할까?
믿는 사람에게 있어 사는 일은 하루 하루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은 구주 예수께서 열어 주신 삶이다. 그의 뜻을 찾고, 그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 속에서 존재의 목적을 찾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우리를 돕고, 자원을 공급해 주시고, 악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삶을 살고 있다.
그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모시고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항상 아버지 뜻 앞에 자신을 비우고 드리며 살았다. 육체적으로 배가 고플 때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의 양식이었다고 한다. 그런 아들 예수를 하나님 아버지는 그 자신의 오른 편에 앉히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삶은 우리 피조물인 인간에게 모범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서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비워 드리는 삶에 있어서 그렇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삶의 목적으로 살았을뿐 아니라, 항상 그 아버지를 의지함으로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신학적인 표현으로는, "삶의 목적"과 "삶의 자원"을 하나님 아버지께 두고 살았다고 표현한다.
신자들은 이런 삶의 태도를 본받아 살면서, 그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귀한 형상을 드러내며 산다. 이런 삶의 태도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신자들의 삶의 원리와 방법으로 주어지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이런 삶의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는 일과,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사는 삶 속에서, 성경이 약속하는 삶의 의미를 알며, 존재의 의미를 이루워 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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