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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사랑교회 김규태 목사, '축복의 시작'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7-08 04:00

하늘사랑교회 담임 김규태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레위기 23:9~14
첫 열매는 축복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결과를 가지고 이리저리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이 진료 기록지에 무엇인가 알아볼 수 없는 영어들을 기록하더니, 맨 밑에 “정근암”이라고 쓰는 겁니다. 평소 자신의 건강에 관심이 있던 이 남자는 ‘암’이라는 글자를 보고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아, 나도 암에 걸렸구나!”

의사는 이 남자에게 잠시 자리를 피해달라고 하더니, 동행했던 아내를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는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처방전을 써 주면서 앞으로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말하고는 환자를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 암 환자는 자신의 건강이 걱정되어 매일 밤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 환자는 며칠 뒤에 다시 그 병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대체 ‘정근암’이 어떤 암입니까? 지금이 몇 기입니까? 지금이라도 수술만 하면 고칠 수 있나요?”

그러자 의사가 눈을 크게 뜨고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정근암’은 제 이름입니다.”

여러분, 이게 인간입니다. 의사의 글씨 하나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굉장히 강한 것 같고, 잘난 것 같아도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연약한 존재가 지난 6개월 동안 평안히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뒤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를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살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주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맥추감사주일에 잘 읽히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맥추절은 농경사회와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겨울 동안 자랐던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추수의 시작이 되는 절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거두어들이는 곡식 중에 가장 첫 번째 것이 바로 보리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으로 빵도 굽고, 다른 음식으로도 만들어 먹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서 보리 추수는 앞으로 이어질 다른 곡물 추수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보리 추수가 잘 되면 앞으로 거둘 곡물 추수도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승합니다. 그러나 보리 추수가 어려우면 앞으로 거두게 될 다른 곡물 추수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16장 9절 이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9~10).”

하나님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유월절(정확하게는 유월절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무교절 기간 중에 있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시작해서 일곱 주를 세어서 ‘칠칠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맥추절’을 다른 말로 ‘칠칠절(七七節)’이라고 합니다.

또 오늘 본문 다음 구절인 레위기 23장 15~16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50일을 계수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맥추절’을 다른 말로는 ‘칠칠절’, 혹은 50일을 뜻하는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 이 세 가지 이름은 모두 보리 추수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이름이지만,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맥추감사절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첫째로, 맥추감사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우리를 위하여 그 곡물 첫 단을 하나님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11절)”

이 명령은 첫 곡식 단을 드릴 때(초실절)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때로부터 50일이 지난 오순절에는 무엇이라고 명령하셨을까요? 20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로 삼을 것이니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여기서도 떡과 함께 두 마리의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제사로 드리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를 다른 말로는 ‘흔들 요(搖)’자와 ‘차례 제(第)’자를 써서 ‘요제(搖第)’라고 부릅니다. 제물을 그냥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흔들어서 드리라는 거지요.

“아니, 무슨 예물을 드리는데 예물을 흔들어서 드리라고 말씀하실까? 그냥 은밀하게, 조용히 드리면 그만이지, 왜 그것을 흔들고 야단법석을 떨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예물을 흔들어서 여호와께 드리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도록,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도록 하나님 앞에서 흔들라고 말씀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물을 사람 앞에 흔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흔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 얻은 소중한 곡식 단을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도록 그것을 흔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이 단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보여드립니다. 제가 이것을 얻을 수 있도록 저에게 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예물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흔들어서 드려야 합니다. 내가 드린 헌금을 사람 앞에 흔들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을 얼마든지 흔들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가끔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 가운데 내가 드리는 헌금과 봉사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생각을 놓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 찬송, 헌금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고 계심을 알고 계십니까?

혹시라도 “받기는 뭘 받아. 그냥 때가 되면 드리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도록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예물을 하나님께 흔들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도록 말이지요.

제가 몇 해 전에, 제 딸들의 학교 운동회를 갔었습니다. 운동장에 가득 모인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요. 그래도 그중에 가장 제 마음에 드는 아이는 누구였을까요? 두말하면 뭐합니까? 당연히 제 딸들이지요. 딸들이 100m 달리기를 했습니다.

아빠가 멀리서 자기의 달리기 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딸이 있을 힘을 다해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비록 딸 아이가 여섯 명 중에 서너 번째로 들어왔어도, 저는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이를 악물고 달리는 딸 아이를 보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여러분은 제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삶 속에서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온몸을 흔들면서 몸부림칠 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쁨에 관하여, 스바냐 3장 1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도록 우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눈에 뜨이도록 흔들어서 드려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것을 흔들어 드리지 않아도 이미 그 예물을 받으십니다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너희의 예물이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요, 배려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에 드렸던 헌물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감사 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 생활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 8:4-5)”

바울이 말한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일이요, “성도 섬기는 일”은 가난했던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성도들의 감사 생활은 은혜의 연장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고는 깊은 감사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게 여겼던 바리새인 시몬을 향해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12절과 13절을 보십시오. 첫 곡식 단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곡식 단만 드린 것이 아니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함께 번제로 드렸고,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 분의 이 에바를 불로 태워 화제로 함께 드렸고, 포도주 사 분의 일 힌을 전제로 부어 함께 드렸습니다.

여기에 드려진 것들은 모두 귀한 것들이지만, 제사하는 이들이 충분히 드릴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었습니다. 이때는 시기적으로 첫 보리 수확을 시작할 때였기 때문에 그만큼 드릴 것이 궁한 형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생활은 각자의 힘대로 하면 됩니다. 형편껏 드리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드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 생활은 점점 더 넓어져야 합니다. 첫 보리수확일로부터 50일이 지난 오순절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이때는 시작했던 보리 추수가 모두 마쳐져서 먹을 것이 풍성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보리의 첫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렸지만, 이때는 그 보리로 떡 두 개를 만들어다가 하나님 앞에서 흔들어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떡 두 덩이를 흔들어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번제로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또한,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뿐만 아니라,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도 화목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첫 수확물을 거둘 때의 궁핍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50일이 지난 ‘오순절’ 혹은 ‘맥추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풍성한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감사는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이 감사를 훈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라.”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감사를 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명령이든지 그 명령대로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감정이기 이전에, 순종과 훈련이 요구되는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는 조건적이지 않고 무 조건적이고, 상대적이기 않고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하박국의 감사를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이 고통당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악인이 득세해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은 당장 악인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잠시 사용될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악인마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절대적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이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비록 여러분이 고통 중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로 더욱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일 년 전과 비교할 때, 여러분의 감사 생활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비록 일 년 전이나 6개월 전보다 여러분의 생활환경이 더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은 더욱 깊어져서 더욱 깊은 감사, 더욱 풍성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를 수확하는 맥추감사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작하여 7주간 진행됩니다. 그리고 오십일이 되었을 때 그 절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열매 곡식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 곡식 첫 단을 여호와 앞에서 흔들었는데, 그것을 흔든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제사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육중한 휘장 앞에서 소중한 첫 열매를 흔들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육중한 휘장이 찢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훗날 히브리서 10장 20절에서는, 이 사건을 가리켜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일 년에 단 한 번,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처럼, 예수님의 육체가 찢겨 지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이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몸을 찢으시면서까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원하셨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2-23).”

한 해에 처음 얻은 첫 열매가 성전의 휘장 앞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으로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부활의 둘째, 셋째 열매가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손짓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부활의 생명과 능력을 의지하여, 이 험난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대표작 「빙점」을 비롯해 여러 자전적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그녀는 폐렴으로 13년을 고생하며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그녀는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는 체험도 했습니다. 그녀가 생명의 불씨를 태우며 집필한 여러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질문했습니다. “기독교에는 불교의 ‘나무아미타불’과 같은 염불이 없지 않습니까?” 미우라 아야코는 말했습니다. “염불은 이생에 존재하지 않는 죽음 저 건너편의 행복을 바라보면서 읊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염불이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임마누엘 아멘’만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죽어서만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기에, 지금 이 땅에서도 우리가 천국을 누릴 수 있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고백은 과거형이나 미래형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직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원망과 불평 대신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출처: 유재필, 「주님과 한 걸음씩」(서울: 두란노, 2010); 「생명의 삶」(서울: 두란노, 2022년 6월호), 151에서 재인용.

저는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감사가 하나님의 눈에 띄도록 하나님 앞에서 흔드십시오. 사람 앞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흔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의 감사 생활이 더욱 넘쳐나길 바랍니다. 남은 하반기에는 여러분의 감사가 상반기보다 더욱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에 더욱 감사한 일, 더욱 풍요로운 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감사 생활을 훈련하십시오. 작은 일에 감사하시고, 감사의 횟수를 늘려나가십시오. 유명한 설교자였던 스펄젼 목사님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빛을 주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십시오. 휘장 앞에서 흔들려졌던 예수님은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주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절대적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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