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나교회 정영구 담임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하늘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명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 8장 12절을 보면 부끄러움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얼굴까지 붉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생명으로 받아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강퍅한 마음은 단단한 마음입니다.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얼굴이 굳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심하면 회당장처럼 분노하는 얼굴이 됩니다. 누가복음 13장 17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말씀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자만이 얼굴의 부끄러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율법은 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본문 말씀에는 축복은 없고 저주만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문자적 율법의 기능에는 저주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쓰여진 것으로, 자기 기준으로만 보면 율법은 다 저주의 말씀입니다. 그 문자적인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외식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속입니다. 아니면 스스로 그 율법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시킵니다. 왜냐하면 그 문자적인 율법의 주인은 ‘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기준에 나는 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준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복이고 다른 사람은 다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에게 말씀은 나에게 한없는 은혜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물도 없는 잔인한 심판의 잣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가 저주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8장 10절부터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내 아내를 타인에게 주고 내 밭도 남에게 주고 모두가 내 것을 빼앗기 위해 욕심을 내게 하실 것이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래서 12절, 엎드려지고 거꾸러집니다. 이것이 율법의 저주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깨닫고 아는 자만이 주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어야지만 은혜의 남편과 영원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됩니다. 그 선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율법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모든 기준은 예수님이십니다. 안식일의 주인이고 거룩함의 주인이고 하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우리에게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시고 저주의 매임을 풀어 주시고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누가복음 13:10-17, 예레미야 8:8-12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