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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두 증인의 부활(요한계시록 11:7∼10)
[1]
<11장>에서 두 증인은 개별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언제나 같이 활동했습니다. 이적을 베풀고, 고난을 겪으며, 죽임당하고,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을 둘이서 함께 했습니다. 만약 이 둘이 서로 다른 사람이어서 두 명의 개인이라면 이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각자의 인생과 주어진 사명이 다르기에 두 사람이 같은 길에서 사역하면서 <11장>에 나온 것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은 혼자 힘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이 택하신 공동체를 통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로마서 8:28).
[2]
<4절>에서 두 증인은 <스가랴서 4:1∼14>에 나온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두 등잔대와 같습니다. <스가랴서>에 나온 올리브나무 두 그루를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인용했는데, 일곱 대롱에 연결된 등잔 일곱 개는 두 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두 등잔대(촛대)는 <2∼3장>의 일곱 교회를 나타내는 일곱 금 촛대(1:12ㆍ20; 2:1)와 같은 걸 상징합니다. 일곱 금촛대가 교회를 나타낸다면 두 촛대 역시 그러합니다. 이 책에서 일곱 교회는 실존했던 교회이면서 신약시대 전체에 나타난 교회를 상징적으로 축소한 것이고, 두 촛대는 복음의 증언 사역을 맡은 교회를 뜻합니다. 따라서 둘과 일곱이라는 숫자는 각각의 문맥에 의해 달리 사용된 것일 뿐이고 드러내고 있는 의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둘이 일곱이고, 일곱이 둘입니다.
[3]
같은 기간을 <2절>에서는 ‘달(月)’로 <3절>에서는 ‘날(日)’로 표현했습니다. <2절>은 포위되고 빼앗기고 짓밟히는 도성에 관한 이야기이고, <3절>은 예언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역사 기록에서 도시가 포위되는 기간은 흔히 달로 표현합니다. 적에게 포위된 기간은 어둔 기억이기에 그걸 날로 표현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은 날마다 시행해야 하기에 요한은 이걸 날로 자세하게 표현했고, 달로 뭉툭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것처럼(시편 90:12) 복음에 대한 증언을 그도 날로 표현했습니다.
[4]
<4절>은 교회가 가진 능력의 원천이 뭔지 알려줍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올리브나무(감람나무)는 <스가랴서 4:3>을 인용한 것입니다. 당시는 석유를 사용하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올리브유를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올리브나무는 풍성한 기름의 공급원이었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올리브유를 가지고 있다는 건 밤에 불을 밝힐 수 있는 재료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건 생활이 얼마나 윤택한지 측정하는 수단이었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 가정이 가지고 있는 올리브유의 양으로 그 집안의 부(富)를 측정했습니다. <스가랴서 4:6>는 이 기름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인용한 요한은 교회가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어둠을 향해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성령님의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5]
<5∼6절>에서 구약시대의 대표적 선지자인 모세ㆍ엘리야가 사역의 모델로 등장했는데, <5절>과 <6절a>까지는 엘리야의 사역입니다. <5절>은 <열왕기하 1:10∼14>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으로 증인의 입에서 나온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또 이는 선지자적 증언 사역을 감당하는 두 증인의 능력을 강조한 것으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지 못하게 했던 건 엘리야의 사역입니다(열왕기상 17:1∼7). <열왕기상>에서 가뭄은 3년 조금 못 미치게 계속됐고, 3년 반 후에 다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아합왕에게 비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열왕기상 18:1, 누가복음 4:25). 또 <5절>은 하나님이 주님의 백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두 증인이 사명을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그들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증인들의 입에서 나온 메시지가 그대로 성취됨으로써 이들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이들이 말한 메시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됨으로써 아무도 두 증인에게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6]
<6절b>는 이집트에서 물을 피로 바꾸고, 이집트 사람들에게 각종 재난이 일어나게 했던 모세의 사역을 반영했습니다. <출애굽기 7:14∼24>에서 물을 피로 바꾼 재앙은 열 가지 재앙 중 첫 번째로, 재앙 전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8:7∼9>에도 이를 반영한 표현이 나옵니다. 요한이 <출애굽기>에 나온 열 가지 재앙을 다 열거하지 않았지만, 열 가지 재앙 전체를 염두에 두고 대표적인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교회는 복음 증언의 사역을 감당하는 한 모세ㆍ엘리야가 지녔던 제사장적 또는 왕적 권위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7]
<7절>에서 헬라어 ‘폴레모스 포이에오’로 표현한 말씀을 <새번역성경>은 짐승이 두 증인과 “싸운다”로 번역했고, <개역개정성경>은 “전쟁을 일으킨다”로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개역개정성경>의 번역처럼 전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다’란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킨다”란 표현은 두 사람을 문자적인 둘로 보지 말라는 장치입니다. 헬라어의 어감으로 보면 이는 두 사람이 집단이란 뜻입니다. 게다가 이들의 죽음을 보고 사흘 반 동안 기뻐하는 무리가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입니다(9∼10절).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것도 아니고, 두 명이 죽었는데 해 아래 세상의 무리가 이걸 다 본다는 게 합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8]
두 증인이 입은 상복, 굵은 베옷은 두 증인의 메시지와 부합하는 옷차림입니다. 두 증인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차림새나 거동은 이들이 전한 메시지와 일치해야 합니다. 교회의 임무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기에 교회의 모습은 이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와 교회가 입고 있는 옷ㆍ행동이 다르면, 해 아래 세상의 사람들은 종말에 관한 교회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생각해 이걸 무시할 것입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이 주신 능력이 있기에 죽음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마태복음 16:18). 여기서 요한은 교회가 예수님이 준 능력을 얻는 과정을 세 장면으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는 두 증인이 살해되는 것이고(7절), 두 번째는 두 증인의 버려진 시체를 두고 이들을 죽인 세력들이 축제를 벌이는 장면이며(8∼10절), 세 번째는 두 증인이 하늘에서 나는 소리에 따라 부활하고 승천하는 것입니다(11∼13절). 두 증인이 승천하고 나자 드디어 하늘에서 두 증인의 원수들이 남아 있는 해 아래 세상을 향해 재난을 쏟아부었습니다.
[9]
장례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인간만의 특별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제대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나 시신 일부를 동물이 훼손했을 때 그걸 하나님의 징벌로 봤습니다(열왕기상 22:38, 사도행전 12:23). <사도행전>에 나온 헤롯의 죽음을 두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왕의 뱃속에 난 종기로 인해 그가 크게 고통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죽은 두 증인을 제대로 장례도 치러주지 않고 “큰 도시의 넓은 거리에 그대로 방치했다”라고 했습니다(8∼9절). 이는 이들의 죽음이 매우 수치스러운 모습을 띠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두 증인은 악의 세력에게 철저하게 패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들의 죽음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이들의 수치스러운 죽음은 해 아래 세상에서의 관점에서만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8절>에 따르면 이건 두 증인인 교회가 십자가에서 수치스러운 죽임을 당한 예수님의 본을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분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마태복음 16:24). 따라서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절대로 지지 않고, 추종자들에게 자기의 십자가까지 대신 지라고 강요하는 사이비ㆍ이단 교주가 있다면, 그는 두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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