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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심교회 신아브라함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눈을 만드신 이
사람의 눈과 동물의 눈의 차이점을 아는가?
사람의 눈은 동물의 눈과는 다르게 어디를 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유는 사람의 눈은 공막이라고 불리는 흰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설사 동물의 눈이 각막을 제외한 공막이 크다 해도 그들의 공막은 각막(홍채)과 색이 유사하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많이 있지만 눈의 흰자가 사람됨을 나타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협동 사냥을 위해 동료의 눈동자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자나 들개 하이에나 같은 짐승들은 협동 사냥을 전문적으로 하지만 그들의 눈은 흰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적다. 때문에 눈동자 만으로는 동료의 시선을 알아 차릴 수 없다.
동물의 시선은 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눈동자의 모양으로 어디를 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사람은 유아기 때부터 어머니의 눈동자에 반응한다. 그러나 짐승들은 머리 방향에 반응한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에게만 눈의 흰자를 크게 하셨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눈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말도 있듯이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 어느 정도는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을 제외한 짐승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 인간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곧 하나님과의 교제와 동행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처음부터 완벽한 언어를 가진 존재였고 처음부터 완벽한 감정과 이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신체 기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간의 모든 신체기관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해 최적의 형태로 설계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문에 사람의 눈은 여타 짐승과는 다른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람의 눈은 흰자의 비율이 높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동행,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위한 것이다.
눈과 관련된 몇몇 성경 구절을 찾아보자.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시94:9)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40:26)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39:7)
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잠16:30)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11:34)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17:1)
성경에는 눈에 관한 구절이 많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을 눈을 높이 들어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한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며 죄를 짓는 삶을 눈짓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어디에 시선이 가느냐는 나의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일이다.
사람을 돕고 섬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어디에 시선이 두는지 눈을 보며 알아차려야 한다. 이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눈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을 돕는 목양의 입장에 있다면 양들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을 설계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교제와 동행을 염두에 두셨음이 틀림없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시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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