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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디모데전서 5장 14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달란트 비유 앞에 그대는 자신 있게 설 수 있나요? 비유의 강조점이 다섯, 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으로 남김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김을 분량적 개념으로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달란트의 가치에 대한 최선의 선용입니다. 예를 들어 진리는 세상을 리더 해 가야 하고 복음은 죄인을 구원의 반열에 세워야 함과 같습니다.
달란트는 땅에 그냥 묻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하다못해 변리 업자에게 맡겨 생산적 가치를 다할 수 있도록 했어야 옳았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보편적으로 달란트 비유의 핵심을 많이 남긴 자가 많이 가질 것이라는데 두는 경우가 다수겠지요. 과연 그럴까요?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긴 주인의 지혜는 각자의 재능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분량이었습니다. 주인의 기대는 누가 많이 남겼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에 얼마나 충성을 다했느냐였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칭찬과 보상이 각자의 회계 보고 후에 주어진 것으로 보아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있을 것으로 암시합니다. 묵상해 보세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초대 교회가 안고 있었던 당시의 사회적 책임론을 구제 사역에 무게들 두고 구제의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모세의 율법을 모법으로 했을 때, 빈자와 고아와 과부로 지정할 수 있는바, 특히 애매모호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투명하게 조명해 주는 바울 신학의 논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난제들이 산재해 있는 가운데 구제 사역의 실천 현장은 물질과 생존의 문제가 맞물려 있어 여간 지혜롭지 않으면 논란의 불씨를 던질 수 있어 당시 디모데를 염려하는 바울의 애틋한 심장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 본문이 속해 있는 단락의 내용입니다.
곧 구제 사역의 실천 현장에서 교회 안의 과부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에 관해 교훈하기 위해 세 부류의 과부를 그 성격에 따라 분류하고 그 각각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참 과부와 자녀가 있는 과부와 젊은 과부로 분류합니다. 참 과부는 교회의 책임 하에 교회로부터 경대 받아야 할 것을 밝힙니다.
여기서 참 과부란, 연령이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반드시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성실한 결혼 생활 도중에 혼자가 된 과부여야 하고, 도덕적 품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헌신하는 자라야 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기도생활을 열심히 행하는 자로서 주님 외엔 다른데 무관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녀나 친인척이 없어 외로운 자, 이 다섯 가지를 참 과부의 자격 요건으로 제시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격 요건이 갖추어진 과부를 참 과부로 분류하고 교회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존경하되 경제적인 원조까지 아끼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과부(4절)는 참 과부와 구별하는데 이는 혈혈 단신이 아니라 부양을 책임질 수 있는 자녀나 직계 자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런 가정을 도움의 손길에서 전혀 배제 해서는 안 됩니다. 직계 자손이 있다 할지라도 부양 책임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까닭에 평소 교회는 교육을 통해 훈련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과부는 60세 이하의 혈혈 단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직 나이가 있기 때문에 재혼할 여지도 있고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이들이 교회의 인정을 받아 일평생 헌신을 서원하고(12절) 교회의 구제 대상이 되었다가도 재혼할 기회가 생기면 봉사 활동을 그만두고 제멋대로 행동한 사례가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물론 재혼 자체가 죄가 되거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재혼을 빙자하여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이행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바 직분을 외면하는 것은 주님께 대한 신실한 사랑과 성실성을 저버리는 불충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바울은 본문의 "그러므로"에 젊은 과부의 재혼을 권장하는 내용을 담아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곧 교회는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자들이나 상황에 대해서 비난보다는 그들의 평안한 삶과 행복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적극적인 역할과 자세를 지녀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초대 교회가 안고 있었던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 교회의 목회 현장에 늘 이슈로 등장했던 이해관계의 상당한 불협화음들 중에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구제 사역에 있어 아주 민감한 과부 문제를 짚어 보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게 민감한 부분으로 지목되지는 않지만 원리적으로 잘 적용하여 교회와 성도의 덕목에 항상 긍정의 청신호가 되는 그대이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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