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뉴저지 빛교회 김희건 목사, Ph.D./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한 가지, 구약은 어떤 장소를 구별하고 신성시하였다. 성전이 그러하였고 그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의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기독교 이전의 종교들은 어떤 장소를 신성시 하였다고 한다.
신약에 와서 달라진 것은 그 중심이 장소에서 시간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이 아님을 언급한다. 이제 장소보다 중요한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자세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부분이었다. 그때 한 장소가 사라진 대신, 세계 각처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새로운 장소(교회)가 생겨났고, 예배드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의 의미로 신성화되었다(고전 3: 16).
그와 함께 신약 성경에서 강조된 것은 "시간"의 중요성이다. 계시록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주장하시는 "알파와 오매가"의 하나님이시다. 시간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세계를 통치하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잠시 어떤 장소를 주관하다가도 시간의 주인 앞에 결국 굴복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은 짧은 듯 하면서, 영원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작은 시간 속 행위는 영원한 기록으로 남는다. 어느 한 순간도 망각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찗은 시간을 함부로 취급할 수 없지 않는가? 이 시간 속의 앉고 일어섬을 하나님이 보시고(시 139: 2), 시간 속 무심코 하는 말도 장차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해명을 기다린다(마 12: 36). 그때 무슨 말로 변명할지를 미리 준비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또 우리의 크고 작은 수고와 섬김에는 상급이 따른다고 한다(마 16: 27). 우리는 헛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작은 시간들은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갖는다. 우리는이 시간이 마치 내것인 것처럼 살기 쉽다. 그러나 이 시간은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슨 동기로 살아 왔고, 누구를 위해 살아 왔는지 주인 앞에서 설명해야 한다(롬 14: 12). 이런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하루 하루 시간을 의미있게 맞고 보내는 신앙인의 마음과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