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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7-22 05:00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디모데후서 2장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눈 뜬 이른 새벽의 장엄한 어둠을 밤새 밝혀 어쩌다 남모르는 사연 때문에 밤길을 가야 했던 외로운 길손들의 눈이 되어 준 거리의 네온 등불이 역시 새벽의 기도길에 나서는 성실한 용사들의 눈과 발걸음에도 한몫을 해줍니다. 오가는 차량들도 스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로변의 가로수들도 네온 빛에 덩달아 황금빛 은빛 자태를 뽐내며 감탄의 볼거리로 화답합니다. 넓은 도로의 중앙 분리대를 조경수로 단장한 싱그러운 가지들과 잎들은 새벽바람과 달리는 차 풍에 한들거리며 남해의 은빛 바다를 연상케 합니다.

    무심코 달리는 기도자의 뇌리에는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주워 담느라 분주하겠지만 오히려 기도자의 가슴은 아픈 작금(昨今)의 세계사에 먹먹한 눈물의 기도로 채우며 주님의 시은 좌를 주목합니다. 왜 인생은 심은대로 저렇게 잘 자라주는 조경수처럼 살지 못할까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가시적인 지상 교회로 보고 지상 교회를 큰 집으로 비유하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형성하고 있음을 표현하면서 금이나 은과 같이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과 나무나 질그릇같이 천하게 쓰임 받는 그릇으로 표현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롬 9:21~23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오"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씀과 상관하여 본절의 "귀히 쓰는 그릇"을 로마서 9장 23절의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으로, 본절의 "천히 쓰는 그릇"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교회 내에 귀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과 천하게 쓰이도록 예비된 교인이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해석들이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본문 21절의 "깨끗하게 하면"에 대한 해석도 혹자는 악한 생각이나 행위를 버리고 내면적인 정결을 이루라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또 혹자는 17절에서 언급한 후메내오나 빌레도와 같은 거짓 교사들의 행위나 가르침을 피하여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문맥상 앞서 언급한 영지주의와 본문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바울은 본문에서 귀히 쓰는 그릇의 특징을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준비함이 되리라"로 요약합니다.

   "거룩"은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께 순수하고 온전하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하며,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것은 모든 그릇들 가운데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을 결정하는 분은 주인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비유하며, "합당하게"는 주인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는 귀히 쓰는 그릇은 선한 일을 하며 모든 이에게 유익을 끼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릇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보낼 때의 목회 현장에 대두된 문제는 교리적 무장의 중요성이었습니다. 후메내오나 빌레도 같은 거짓 교사들의 분열 조장이 그것이었습니다.

    까닭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을 비진리와의 논쟁을 피하고 바른 진리로 철저하게 무장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권면과 아울러 교회의 구성원들은 마치 큰 집에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이든 나무나 흙으로 만든 그릇들이 있어 언제든지 주인이 쓰고자 할 때 선한 목적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핵심은 금과 은과 나무와 흙으로 만든 그릇의 구별이 아니라 주인은 용도에 따라서 그릇을 선택하되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을 선택하여 사용할 것이라는 보편적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이라 하여 모두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일까요?

    나무나 진흙으로 만들었다 하여 죄다 더러울까요? 아무리 로마서의 말씀을 근거한다 하더라도 본문의 문맥에서 바울이 강조한 것을 주인이 합당하게 쓸 준비가 되어 있도록 깨끗하게 잘 닦아 놓은 그릇을 말하고 있을 뿐 금과 은 그릇을 강조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큰집에는 그런 종류의 그릇들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사회가 가늠하는 지위 고하 나 상하 계급, 혹은 빈부의 격차나 남녀노소의 구별을 하지 않습니다. 지식의 유무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든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됩니다. 

    금이나 은 그릇이 무조건 깨끗하다거나 질그릇이 무조건 더럽다고 전제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질그릇도 천하게 쓸 의도로 집안에 준비되었을지라도 그것 역시 주인이 합당한 곳에 쓸 것이고, 금과 은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주인이 쓰고자 했을 때, 금 은그릇이든 나무 그릇이든 질그릇이든 깨끗하게 닦아 놓은 그릇에 손이 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묵상 키워드는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처럼 주님께서 적지 적소에 그대를 투입할 수 있는 주님의 일꾼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결코 '금이냐? 은이냐? 나무냐? 질그릇이냐?'에 시간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의 손에 붙잡혀지고 들려지고,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투입되어 쓰임 받는 그대이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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