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늘사랑교회 담임 김규태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고린도후서 3:1~11
당신은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저는 최근에 몇 분의 추천서를 써 준 적이 있습니다. 평상시 저와 친분이 있던 분들 중에 몇 분이 저에게 찾아와 목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부탁해서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분들의 추천서를 써 드렸습니다.
목사의 추천서가 필요한 직장은 주로 기독교 관련 방송사나 대학교, 선교단체와 같은 곳들입니다. 그래서 저의 추천서 내용에는 이분이 기독교인으로서 이 직장에서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평상시 그의 인품과 삶의 습관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됩니다.
우리가 꼭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목적만 가지고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분과 새로 교제를 시작할 때, 그분을 잘 아는 다른 분이 우리에게 그분을 믿을 만한 분이라고 추천해 준다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서 좀 더 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은 추천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근심하게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로 인해서 근심했고, 바울이 다시는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대신 네 번째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회에 보내기로 결심하였고, 그 편지가 고린도후서라는 내용도 살펴보았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바울을 대적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자신이 참된 사역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어떤 종이로 된 추천서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참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과 논쟁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반문함으로서 종이로 된 추천서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2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여러분, 과연 고린도교회를 누가 세웠습니까? 바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고, 지금 바울의 편지를 읽고 있는 성도들도 바울의 사랑에 의해서 세워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 무슨 추천서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우리의 편지다.”라고 말할 때,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편지’는 ‘추천서’를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바로 너희가 우리의 추천서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종이로 된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바울의 사랑과 수고로 세워진 고린도교회야 말로 모든 사람이 알고, 읽을 수 있게 쓰여 진 바울의 추천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천서를 써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3절에서, 바울은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추천서)를 써 주신 분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읽고 있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높은뜻 덕소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오대식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불교 신자였는데, 선생님은 교회 다니는 아이들에게 조그만 일에도 핀잔을 주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다니는 아이가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선생님은 “교회 다닌다며, 성적이 이게 뭐냐?” “기도는 안 하냐?”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은 선생님이 차라리 “왜 공부를 안 하냐?”하고 야단을 치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친한 친구들끼리 방 배정을 해 주겠다고 하신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들은 다 같은 방으로 배정해 줄 테니 그렇게 알아라!”
수학여행 첫날 밤, 숙소 앞마당에는 신나게 음악을 곁들인 춤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이 분의 숙소로 찾아와서, 설문지를 내놓으며 작성해 달라고 부탁하더랍니다.
작년 수학여행 때, 학생들이 장난으로 설문지를 작성하거나, 술을 마신 상태로 이상한 이야기를 써서 선생님이 망신을 당하셨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믿을 놈들은 니들밖에 없다!”
선생님은 예수 믿는 학생들에게 기대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출처: 오대식, 「하나님이 당신을 응원합니다.」(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9); 「생명의 삶」(서울: 두란노, 2018년 1월호), 129에서 재인용.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요, 그리스도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다함께 6절을 찾아서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과연 바울이 말하는 ‘새 언약의 일꾼’이 무엇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과 맺으신 ‘약속’을 가리킵니다. 이 언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나뉩니다.
옛 언약은 율법 조문으로 맺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조문’이라 함은 ‘글자’ 혹은 ‘문자’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율법 조문’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듯이, 십계명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옛 언약의 일꾼은 모세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와 맺으신 약속입니다. ‘새 언약’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곳은 예레미야 31장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3).”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두 돌 판에 기록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사십일 동안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산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이 두 돌 판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게 될 새 언약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사람의 마음속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 조문이 죽이는 것’이라는 말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율법 조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십계명은 귀하고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해서 율법 조항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죽이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킬 만큼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깨닫고 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성령은 우리를 살리십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행하십니다. 6절에서, 바울은 새 언약의 사역을 ‘영의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다함께 7절과 8절을 한 음성으로 읽겠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바울은 ‘옛 언약’에 비교하여 ‘새 언약’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시내 산에서 율법을 수여받고 내려왔던 모세의 얼굴 이야기를 꺼냅니다. 모세가 사십 주야를 하나님과 교제하고 양 손에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들고 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었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 난 광채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살리는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옛 언약의 직분’을 ‘율법 조문의 직분(7절)’, ‘정죄의 직분(9절)’, ‘사라져 버릴 것(11절)’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바울은 ‘새 언약의 직분’을 ‘영의 직분(8절)’, ‘의의 직분(9절)’, ‘영원한 것(11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과연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되었던 새 언약이 언제 성취가 됩니까? 누가복음 22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행하셨던 최후의 만찬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주시며, 이러한 행동이 궁극적으로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는 행동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붇는 것이라(눅 22:20).”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몸 찢기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와 새로운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할 새 언약을 친히 우리의 마음에 아로새겨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허물 많고, 죄 많은 저와 여러분을 예수 안에서 다시 살리시고,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부족하다 아니하시고, 오직 성령을 통해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이러한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한글라스(한국유리)의 창업자 고 최태섭 회장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로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했습니다.
한번은 기차로 수십 화차 분량의 콩을 일본인에게 사들여 그것을 중국 상인에게 전매하기로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계약금을 받고 물건을 중국 상인에게 인도하기 얼마 전부터 콩 가역이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최태섭 회장은 중국 상인을 만나,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도리라며 물건을 미련 없이 넘겼습니다. 최 회장 쪽에서 계약을 위반하고 위약금을 물어주더라도 그보다 훨씬 큰 이익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계약이 파기될 줄 알았던 중국 상인은 이익을 반씩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최 회장이 그것마저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물건을 인수하고 돌아간 그 중국 상인이 최태섭이라는 조선 사람이 큰 이익을 거둘 기회를 포기하고 신용을 지켰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그 중국 상인은 상공인회 회원들에게 공문까지 발송했습니다. 최 회장의 사업이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얻게 되었을 이익보다 신용을 지킨 것이 훨씬 많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흔히 성도가 세상에서 나타내어야 할 깨끗함은 죄악에 물들지 않으려고 피하고 도망가는 수동적인 자세로 인식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적극적으로 깨끗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 깨끗함이 고유한 캐릭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직함을 보고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출처: 원용일, 「이름 없어도 괜찮아!」(서울: 도서출판 브니엘, 2016); 「생명의 삶」(서울: 두란노, 2020년 7월호), 123에서 재인용.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계신 것도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의 방식처럼, 좋은 추천서를 받았다고 만족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5절).”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여러분이 다른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님의 구주되심을 전하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옛 언약의 일꾼이었던 모세도 얼굴에 광채가 나는 영광을 누렸는데, 새 언약의 일꾼인 여러분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장차 여러분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님의 영광을 대면하여 볼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여러분은 주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존귀한 사람들입니다(18절).
여러분이 새 언약의 일꾼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살이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시험에서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