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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디도서 1장 13~14절)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가슴 언저리에 짓누르는 듯한 묘한 아픔이 기도의 세월에 동반자 되어 긴 한숨에 둥지를 틀어 기도의 무릎을 꿇게 했지요. 돌아보면 참 고마운 친구였답니다. 때로는 절절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격려의 손 내밀어 힘들어 지친 등을 토닥거려 주기도 했네요.
무엇보다 자만의 고개를 못 들게 했고, 겸손과 낮아짐의 연습을 시도 때도 없이 하게 했답니다. 감사의 고백은 입술의 노래가 되게 했고 회개의 기도는 심령의 찬송이 되게 했지요. 말씀을 읽는 눈은 예리한 칼날처럼 본질과 현상에 민첩하게 했답니다.
사물을 대할 때마다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했고, 그런 습관이 때로는 다윗의 흉내를 즐기게도 했지요. 알고 보니 가슴 언저리의 묘한 아픔이 순수 신앙의 좌소 였음을 해 저문 서산에서야 깨닫게 됩니다. 서녘 노을이 아름답듯 왜 노인의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에 비견했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그레데 섬에 남아 목회에 전념하고 있었던 사랑하는 동역자 디도에게 바울이 보낸 서신으로 당시 그레데를 중심으로 한 주변 도시들에 만연했던 천박한 사회 풍습에 물들어 도덕적으로 문란한 상태에 놓인 그레데 교회를 염려한 바울이 디도를 격려함과 아울러 교회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신앙적 규범들을 제시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쓴 목회 서신은 디모데전. 후서와 본 디도서인데 그중 바울 신학의 이론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와 말씀에 기초한 올바른 신앙과 실천 강조는 길고 긴 여운을 타고 세기에 세기를 넘고 넘어 오늘의 지상 교회와 성도들에게 교회와 사회생활의 규범과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그레데 섬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교회의 영적 상태가 오늘의 지상 교회를 그대로 오픈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흡사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에 의해 은혜의 복음이 잘못 해석되어 구원은 일상생활의 행위와 무관하다는 생각이 성도들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디도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버거운 목회 현장이었고 수없이 역부족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하여 바울은 진땀을 흘리며 고군 분투하고 있을 디도를 격려하고 장로로서의 그의 권위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바른 신앙관을 정립시켜 철저하게 무장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여 디도에게 장로의 자격(1:6~9), 거짓 교사들에게 취할 자세(10~16), 남녀노소 그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신앙 윤리(2:1~9), 복음의 내용(2:10~14), 성도의 국가관(3:1~2), 이단에 대한 태도(3:9~11) 등에 관하여 비록 3장에 불과한 짧은 분량의 편지지만 아주 실속 있는 내용을 담아 전했습니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내용들을 배경으로 한 본문의 "그러므로"는 12절에서 언급할 그레데 사람인 어떤 선지자, 곧 에피메니테스가 증거한 내용이 정확한 것임을 밝히고 그 증거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옳은가를 결론적으로 담아낸 접속사입니다.
에피메니테스는 주전 6세기의 시인이며 그리스의 7대 현인 중의 한 사람인 크노수스 출신으로 후대의 작가인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에 의해서 선지자로 불렸다는 사실을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그가 그레데 사람들을 세 가지로 비판을 했습니다.
곧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그레데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의 대명사였음이 인식되고 있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이나 희생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악한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가히 악한 짐승으로 별명이 붙을 만했습니다.
더군다나 언제나 부당한 이익을 추구했고 그저 안이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탐욕의 이리떼와 같았습니다. 까닭에 바울은 디도에게 관습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추악한 악습인가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그레데 사람들을 엄하게 꾸짖어 그 같은 악한 습관을 끊어내라고 명령합니다.
본문의 "엄히"는 "예리하게 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거짓 교사들을 철저하게 발본색출하여 다시는 고개를 처들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징계할 것을 명령한 것입니다. 당시 징계의 권한이 디도뿐만 아니라 장로들에게도 부여되어 있었습니다(1:9).
본문 하반 절은 징계의 목적입니다. 바울의 그림은 그레데 사람들의 온전한 믿음 생활이었습니다. 이는 심판의 의미가 강조된 징계가 아니라 치료의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마치 곪아 있는 종기를 수술 칼로 도려내는 외과 의사의 직무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습은 악성 종양과 같아서 반드시 수술을 거쳐야 온전한 치료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징계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맥을 같이 하는 명령입니다.
마치 초봄에 과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지 작업과 같은 것으로 한 인격체 안에 산재해 있는 영적 혹은 육적인 모든 불순물을 잘라 내는 신적 행위로 죄인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공작인 것입니다. 오늘은 먼저 내 안에 있는 영적 악성 종양들을 제다 성령의 칼인 말씀으로 수술하고 복음으로 타인을 수술하는 영적 외과 의사로 거듭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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