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빌립보서 3장 15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교회 화분에 곱게 핀 늦둥이 철쭉꽃이 만개하여 제 전성기를 뽐내고 있네요. 저렇게 만개한 때가 벌써 열흘이 넘은 것 같은데도 여전히 제 모습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끈질긴 근성을 보며 나름의 메시지를 훑어봅니다. 애잔한 마음으로 가꾸지 않았는데도 참 곱게 피었습니다.
워낙 생명력이 강한 나무인지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면서 가끔 물만 주었을 뿐인데도 저렇게 예쁜 꽃을 피워내네요. 우리 손에 팔려온 지 어언 십오 년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모질게도 살아남아 해마다 제 존재의 몫을 다하고 있답니다.
연수를 더해 갈수록 더 풍성해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모습을 보며 짐짓 부끄러워 자아를 성찰해 봅니다. 대화의 창이 열릴 수만 있다면 살며시 그 비결을 묻고 싶은 충동이 마음 한편에서 꿈틀거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들릴듯 말 듯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가 있네요. '제 본분에 최선을 다함과 기다림의 끈기'라고 말입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예외 없이 언급되고 있는 방해꾼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빌립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순수성을 흐리게 하고 있었던 일명 개들, 행악자들, 손 할례당 등으로 표현한(2절) 유대주의 자들의 침투 상황에서 빌립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견인하는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집요하게 바울을 붙좇아 복음 사역을 방해한 유대주의 자들의 끈질긴 공작은 빌립보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역시 다른 복음 곧 할례주의를 유포하며 이방 교회의 유대화를 획책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율법을 신실하게 모범적으로 지키는 무리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입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연약한 이방 교회의 입장에서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유대주의 자들의 논리는 당시 이방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어 그런 유대주의 자들이 이단 시 하고 있었던 기독교 복음이 난관에 부딪힌 사실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리려는 어리석고 무모한 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무성한 잡초 속에서 움트고 있는 사과나무는 결코 잡초가 될 수 없듯이 바울이 외치는 십자가의 복음은 그 순수성을 잃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리가 비 진리가 될 수 없고 본질은 현상에 의해 변질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본문의 "그러므로"에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를 담아냅니다. 여기 "온전히(τέλειοι)"는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 없는 절대적 완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이전의 연약과 무지에 비하여 꽤 성장한 상대적 완전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이나 진력의 여지가 남아 있는 현재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소속되었고 성별 되었기에 "온전히 이룬 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이 단번에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의 반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는 끊임없이 성장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행여 이 신비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해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여지를 예상하며 그럴 경우에도 주께서 그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덧붙입니다.
이미 바울은 14절에서 빌립보 성도들이나 지상 교회의 성도들이 똑바로 쳐다보고 달려가야 할 푯대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으로 지목했습니다. 여기 "부름"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완성은 모든 언약의 성취로 후사 곧 자녀의 특권, 혹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원한 권세입니다. 이를 구원론에서는 성도의 영화 단계로 구원의 최종 완성을 말씀합니다. 이는 분량적 개념이 아니라 본질에로의 귀결이며 본향에로의 귀향 개념입니다.
오늘은 제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주님의 날을 기다리라는 철쭉의 말없는 메시지와 전도자 솔로몬의 여호와 경외 철학에 올인한 인생의 본분과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견인한 방향에 대한 권면한 생각을 새김질하는 그대이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