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죄의 세 가지 의미
시편 51편 1~2절을 보면 밧세바 앞에서 간음했던 다윗이 나단 선지자 앞에서 신앙의 고백을 하는데 3가지 죄가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 51:1~2)
첫째, ‘죄과’의 의미는 ‘법을 어겼다. 침범하다’ 또는 ‘경계선을 넘는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어 준 경계선, 하나님의 한계선이 있습니다. 그 경계선과 한계선을 넘는 것이 죄과입니다.
둘째, ‘죄악’의 의미는 결함이나 반칙이나 탈선이나 구부러짐을 말합니다. 이 죄악은 탈선입니다. 구부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곧지 않고, 구부러지고, 찌그러져 있는 그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죄악입니다. 죄악에 빠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새 길’이라고 말씀하고, 하나님께서 그 길,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3)
다시 말해서 죄악은 하나님이 주신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길은 ‘좁은 길’입니다. 거기는 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협착합니다. 좁고, 굉장히 굴곡이 심하고, 힘든 길입니다. 그 좁은 길로 걸어가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에 빠지면 자신이 생각하는 그 길로 갑니다. 역리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그 길로 계속 갑니다. 우리는 늘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이것이 길의 싸움입니다.
셋째, ‘죄’의 의미는 ‘하마르타’로써 ‘과녁을 빗나갔다’라는 뜻입니다. 중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맞추어야 하고, 정확하게 중심을 찍어야 하는데 중심을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죄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그어 준 경계선을 벗어나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걷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물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한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지, 둘 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12절에서 “그를 알지 못하고 세상이 그를 영접치 아니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잘 모르고 대부분 죄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들은 ‘내가 무슨 죄인이야’ 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날마다 죄 앞에서 짓눌려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매일 죄만 보입니다. 평상시에는 잘살고 있다가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으면 죄가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책감에 빠져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죄책감에 눌려 살고, 어떤 사람은 아예 자기가 죄인인 것조차도 모르고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