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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랑선교교회 김데이빗 선교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유일한 복음을 온전하게 가르치라"
사도행전 19:1-10
1. 오늘 말씀은 일대일 제자 양육의 길라잡이같은 말씀으로,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중 주로 에베소 지방의 목회에 전념한 이야기이다.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에 들렀을 때 거기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다시 만날 날을 '하나님의 뜻이면... Deo Volente...'(행18:21)하고 하며 기약한 적이 있다. 에베소 교인들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행18:24-25) 요한의 물세례만 알고 있으므로 그들로 그리스도와 영적 연합을 하도록 성령 세례와 불 세례를 베풀며 진정한 '예수님 제자'로 세우고 가르치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행19:10)을 묵상하게 하신다.
2.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쪽 카이스터 계곡의 입구에 자리잡은 항구도시로 오늘날 터키에 있는데 에베소라 하면 못알아듣고 이즈밀이라고 부른다. 당시엔 교통과 무역의 관문으로 각종 미신과 이방 종교와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음에도 사도 바울은 무려 3년간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굳건히 성숙, 확장시켜 나갔다.
3. 아내와 함께 그리스의 아테네에 QT 세미나를 하러 가는 길에 들렀던 에베소...
정말 그 에베소를 걷는 발걸음 자체가 성경을 읽고 걷는 경험을 해보며... 바울이 2년간 가르쳤던 두란노 서원은 바울의 마음의 흔적들을 만져보게 했던 곳이다.
4.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행19:1)
근데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행18:24-25).
아볼로는 본래 요한의 세례밖에 몰랐었는데 바울로부터 일대일 양육을 받았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부터 일대일 양육을 받고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후 고린도 지방으로 갔지만,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여전히 에베소에 남아 있었다.
5. 나중에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던 아볼로의 영향력은 그가 복음을 깨닫고 더욱 교회 내에서 커진 것 같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4)
6. 사람의 영향력은 복음 안에 있지 않으면 자꾸만 따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맹목적인 제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제자를 자기의 뜻대로 하고 싶어하는 본성... 다스리고 번성하고자 하는 본성이 드러나며 '예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제자'를 만들고 있는 꼴이 된다.
7. 일대일 제자 양육을 함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이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대일 제자 양육은 '내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제자'를 만드는 것임을...
나는 다만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임을...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8.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한 후(행18:23)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에베소에 왔다.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에 들렀을 때 거기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다시 만날 날을 '하나님의 뜻이면... Deo Volente...'(행18:21)하고 하며 기약한 적이 있기에...
9. 바울이 아볼로가 영향을 주던 에베소에 오자 아볼로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요한의 세례밖에 몰랐다는 '어떤 제자들'을 만난다.
이를 감지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했다. 문제는 곧 복음의 기회이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행19:3)
10. '세례'는 이전의 죄를 씻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생활을 하겠다는 뜻을 서약하는 의미로, 온 생애를 드려 주님께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의식이다.
'무슨 세례'(행19:3)이란 말은 세례에 여러 종류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11. 근데 왜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성령에 관해 듣지도 못했는가...(행19:2) 요한의 세례밖에(행19:3) 모른 것일까...
그들은 단지 죄의 고백과 회개라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다. 비록 세례 요한이 장차 오실 메시야에 의해 베풀어질 성령의 불 세례에 관해 분명히 가르쳤지만(막1:8),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에베소의 제자들은 여행자들로부터 세례 요한의 특징적인 가르침만 전해 들었고,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던 아볼로의 영향 때문일 것 같다.
12.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세례를 전한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행19:4)
"요한의 세례는 받았으면서 요한이 이렇게 말한 예수의 세례는 아니?" 하면서...
13. 그러면... 회개의 세례는 무엇일까...(행19:4)
요한의 세례와 같은 말로, 그 세례는 물로 배푸는 물세례로, 그 목적은 회개에 있었다. 회개의 세례는 사람들의 생활에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뿐,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영혼의 생명력 있는 변화는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는 성령 세례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14. '무슨 세례'(행19:3)가 의미하는 세례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고, 예수님을 연결해주는 세례라면,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연결시켜 주는 세례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15.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바울의 손이 성령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바울을 도구로 삼아 성령이 그들에게 오셨다. 이것은 마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장면이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신자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오신 것과 같은 장면이다(행8:17).
이렇듯 바울은 예수님의 세례와 성령의 임재를 연결시킴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임을 확증했다.
16. 하나님께서는 두 경우 다 사도들을 통해 새 신자들이 성령을 받게 하셨다. 에베소의 그 제자들은 성령을 받자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하시며 숨을 불어넣고 계신 예수님의 숨길에 서 있기만 하면 받는 것이 성령충만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 예수님의 숨길 밖의 삶과 숨길 안의 삶을 다른 말로 갈5:17 에 표현하고 있다.
17. 갈5:17 에 보면 사람 안에는 육체의 욕구(죄된 본성)와 거룩한 삶의 성령의 욕구가 존재하는데, 죄된 본성은 성령 충만으로밖에는 회복될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18. 말하자면 사람들 안에는 하얀 늑대와 까만 늑대를 키우고 있는데 어떻게 육체의 욕구를 드러내는 까만 늑대는 잠재우고, 성령의 욕구를 쫒는 하얀 늑대를 강하게 만들 것이냐가 바로 신앙의 생존여부라는 것이다.
19. 답은 간단하다.
먹이를 까만 늑대에겐 주지 않고 하얀 늑대에게만 줘서 까만 늑대를 굶겨 죽이는 것이다. 내 안의 육체의 욕구와 성령의 욕구 중 나는 과연 어느 늑대에게 밥을 줘 강하게 만들고 있을까...
20. '방언도... 예언도...'(행19:6)의 '도...'라는 말을 유심히 보게 하신다.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성경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것이다.
거품물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도... 예언도...'(행19:6)의 '도...'라는 말은 그것에 때로 추가되는 은사들을 가리킨다. 이런 방언이나 예언같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달하고 확증하는데 뜻이 있었다.
21. 바울은 지금 '내 제자'가 아닌 '예수님 제자'를 세우고 있다는 마음을 행19:7 을 묵상하는데 주신다.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행19:7)
예수님의 열두 제자...
그리고 성령으로 제자된 사도 바울이 세우고 있는 또 다른 열두 사람...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 열두 명 가량의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의 설립교인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령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22.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행19:8-9)
바울은 그를 호의적으로 영접했던 자들 덕택에(행18:19) 유대인 회당을 이용하여 3개원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근데 비방하는 무리들이 늘어나자, 바울은 두란노 서원으로 장소를 옮겨 2년간(행19:10) 사역을 계속하였다.
23. 바울은 비방하는 자들의 완악함에 물들지 않도록 제자들을 따로 세웠는데, 오히려 두란노 서원으로 옮김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성령 세례뿐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서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기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10)
24.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행19:10)
이 말씀을 묵상하며 지난 두 해 동안 하나님이 보내주신 땅에서 함께 하시며 주셨던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하게 하신다.
'이같이 하니...'는 '날마다 강론하니라'(행19:9)이고, 나로 하여금 날마다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QT 말씀을 날마다 올리도록 성령이 함께 하신 '이같이 하니' 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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