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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히브리서 2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 그러므로 □
지구촌의 현실은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된다는 개인주의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적 존재가 개인이며 그 개개인은 공존하는 공동체의 유익을 창조할 책임 있는 인간 행동을 근간으로 해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폐기해 버렸습니다.
다수의 정(正)이 소수의 부(不)에 무릎 꿇어야 하는 시대, 본질이 현상을 지지하고 현상이 본질 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입니다. 탕자를 긍휼히 여겨 사랑하는 것은 효자를 미워하거나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귀히 여기는 것이 목자의 품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를 덜 귀히 여긴다거나 목자의 품에서 밀어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탕자는 효자의 자리로, 잃은 양은 아흔아홉 마리의 무리 속으로 이끄신다는 의미입니다. 지구촌의 현재들이 그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쉬운 답안지는 없는데 말입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앞장에서 다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우월성에 대한 논증을 통해 확연해진 사실을 근간으로 유대주의냐 기독교의 복음이냐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었던 개종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함과 동시에 바울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경고한 것처럼 반드시 삼가야 할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서의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세움의 준거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준거를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유대 사회가 안고 있는 구약의 인물들이나 천사들에 대한 우월감을 극복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개종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 즉 복음을 듣고 돌아온 자들입니다.
저자는 논증의 진실성을 어필하기 위해 옛 계시가 어떻게 주어졌으며 또한 새 계시는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제시하고 상호 비교하여 스스로의 공감대를 이끌어 냅니다. 곧 옛 계시는 천사의 중재 사역을 기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이 주어졌으나(2절) 새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직접 주신 것임을 시사합니다.
물론 출애굽기의 율법 하달 기사인 19~20장에서 천사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고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출 19:3; 20:1). 그러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신 33: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현이 얼마나 장엄하고 장중하던지 그 영광의 빛이 시내 산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세일 산과 바란 산까지 퍼져 나갈 정도로 대단한 장면을 시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일만 성도 곧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여 그들을 중재로 율법을 수여 하셨던 것으로 시사했습니다.
천군 천사들의 중재에 대해서는 칠십인 역본에서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유대의 랍비들도 동일하게 해석하고 있어 본장 2절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음을 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성도들이나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은 그렇게 수여된 율법을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또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보다 훨씬 우월하신 분으로서 직접 전해 주신 복음이야말로 절대 온전한 것이므로 이 복음을 듣고 받는 자는 더욱더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여 마치 손가락에 낀 반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삼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함과 같이 그렇게 복음으로 무장할 것을 주문합니다.
자칫 복음을 파수함에 있어 부주의와 관심 부족으로 인해 진리를 잃어버리는 사례는 지구촌 곳곳과 교회 교회마다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강력한 경고는 우리 성도가 얼마든지 복음 진리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떠나 표류하거나 침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각인시켜 주고 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시대 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위기일발의 살얼음판이 교회를 우겨싸고 있습니다. 저자는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라고 "그러므로"에 담아 주의를 상기시킵니다. 복음에 대하여 '더욱 많이 주의하여 깊이 숙고하라'라는 권고입니다.
노모가 일터로 출근하는 아들을 향해 늘 상 '차 조심하거라', '길 조심하거라', '사람 조심하거라' 등등 애처로워 배웅하는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귀가 가려워 허탄한데 온 마음을 쏟는 현실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5)라는 말씀조차 잊고 사는 세태입니다. 복음을 더욱 깊이 숙고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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