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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교회 담임 정영구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말씀에 대한 오해
성경에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마다 다 간음한 죄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다섯 가지 율법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그 죄를 지었느냐, 안 지었느냐의 차원이 아닙니다. 간음을 했다는 것은 가장 친밀한 관계성을 깨뜨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또 하나의 율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보면 안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이혼문제에 대해서도 절대로 이혼하면 안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하나의 율법입니다. 사실은 이혼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성을 갖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서로 존중해 주고 있고, 죄의 확산을 막고 있고, 공동체를 위한 것이고, 대가 지불을 하고 있고, 용서하고 있느냐 이것을 묻고 있고, 이 정신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또 하나의 문자적 율법으로만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5장에서 7장까지 산상수훈인데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을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가 천국에 가서 살아야 될 말씀이지 이 세상의 말씀은 아니라고 합니다. 말씀에 대한 오해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를 또 하나의 율법의 행위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은 마태복음 4장 마지막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태복음 4:23절부터 산상수훈이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보통 “심령이 가난한 자여야지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심령이 가난한 자도 복이 있나니”입니다. 이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무리들은 원래 아픈 사람들이고,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고, 원래 다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보시고, “야 너희들이 복이 있는 사람이야!”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심령이 가난해야 된다고, 가난해야 된다고, 노력해서 복을 내가 차지해야 된다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이 복을 이해해야만 5장 6장 7장까지 갈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사람들은 또 행위로 생각합니다. 은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은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의 속성들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것을 행위로 해석하고 계속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내가 심령이 가난해야 된다고 하면서 자기를 계속 찍어 누릅니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해도 이미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가난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한 번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니 내가 복 받는 사람이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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