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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히브리서 2장 10절)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기도자들에게 있어 가장 두드러진 딜레마는 자신이 바라고 희망하는 바를 주님께 기도했지만 응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더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어필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주께로부터 외면당하는 듯한 상황이 현실을 더욱 난감하게 하기 때문이죠.
그럴지라도 기도 자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딜레마를 굴복시켜 무릎 꿇게 할 뿐만 아니라 길고 긴 고난과 불통의 터널을 뚫어내고야 말겠다는 신앙의 뚝심이 있답니다. 가시밭 가운데 핀 백합화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사나운 가시에 찔리고 또 찔리고 수없이 찔릴지라도 계곡을 진동시키는 향기를 뿜어낸다지요.
하여 일찍이 솔로몬은 술람미를 가시밭 가운데 백합화로 비유하여 신부의 절개와 아름다움을 예찬했답니다. 이는 예표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지상 교회와 성도들을 예찬한 것으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그대의 상황이 어두운 터널인가요? 터널은 지름길을 만드는 최선이랍니다. 힘내세요. 곧 빛이 보이겠죠.
오늘 묵상할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잠깐 동안 성육신하셔서 마치 천사들보다 못한 것처럼 여김을 받게 하신 것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고난을 통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시기 위함이었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는 참하나님이시지만 연약한 인생의 비참을 체휼하신 참 사람이셨음에 초점을 맞춘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속 사역의 성취는 그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그러므로"는 만물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온 만물의 근원이심과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성취된 구속 사역은 오롯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의 강조입니다.
오늘 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속 사역이 주목하는 푯대는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임을 명쾌하게 시사하십니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그 수는 분명히 다수이나 아버지와 아들 외에는 알 수 없으며 오직 얼마든지 부르시는 성령의 소명에 의해서 끝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 구원받은 자들은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양자 됨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증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자는 이 보증의 비밀을 풀기 위해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주 혹은 창시자"는 "퀴리오스(χύριος)"로 만물의 통치자이시며 주인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창시자"로 번역된 헬라어 "아르케곤(άρχηγόν)"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듯이 문자적으로 '맨 먼저 시작하는 사람' 혹은 '개척자'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구원의 창시자"란 구약의 모든 언약과 예언을 완성하시고 구원의 산 길을 이루신 분, 구원받을 모든 후사의 맏아들 되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고 종말론적인 기독관을 선언함으로써 우리 구원의 보증이신 그리스도야말로 구원의 창시자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시기에 절대 완전한 분이셨음을 결론 내리며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시고 종말론적으로 승귀의 신분에 오르신 것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으나 비로소 완전한 자리에 오르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육신을 통해 우리 인간과 똑같은 고난을 체휼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시키기에 완전한 조건을 구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옳습니다. 아직도 믿음 생활에 확신이 없고 구원에 대한 보증이나 근거가 불확실하고 내세에 대한 소망이 희미하여 현실의 풍요와 부요에 민감하지는 않나요? 아니면 천사들이나 능력이나 권세들의 초능력 같은 기적을 바라고 추종하지는 않나요? 멈추세요. 오늘은 구원의 창시자로서 그대의 보증이 되시는 그리스도만 믿고 바라보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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