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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요한계시록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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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에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심판을 이야기한 <요한계시록>에서 다소 생뚱맞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이 책의 숨겨진 매력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한 아이의 탄생으로 표현했는데, <요한복음 1:1ㆍ14>을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온 분입니다. <12장>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탄생을 어둠의 세력이 어떻게 막으려고 했는지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건 <마태ㆍ누가복음>에 나온 예수님의 탄생을 방해한 세력의 영적 모습입니다. 요한은 <마태ㆍ누가복음>에 나온 이야기를 자신이 본 환상을 토대로 당시의 현실에 맞춰 표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태ㆍ누가복음>과 이 책에 나온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다른 건 아닙니다. 같은 일을 <마태ㆍ누가복음>은 해 아래 세상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사건으로 보도했고, 그는 자신이 본 환상을 토대로 문학적 장치를 사용해 기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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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도 이와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탄생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분의 탄생은 인류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리고 <12장>은 이런 역사적 사실이 하늘나라의 시각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합니다. <12장>은 아이의 탄생(1∼6절), 용이 추방당한 사건(7∼12절), 여자와 그 후손에 대한 용의 공격(13∼18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요한계시록>은 크게 교회와 세상의 투쟁을 그린 1부(1∼11장)와 그 투쟁의 깊은 내적 배경을 밝히고 있는 2부(12∼22장)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했을 때 이 책의 주제는 생명과 부활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 죽음과 심판으로 드러나는 사탄의 무능력이 됩니다. 이를 축약해서 <11장>은 부활, <12장>은 생명에 관한 걸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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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 나온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와 ‘승리하는 교회’인데, 이 두 개의 교회는 서로 분리된 게 아닙니다. 본래 하나이지만 둘이 약간의 차이를 두고 등장합니다. 전투하는 교회는 핍박받고 있는 교회의 현재 모습이고, 승리하는 교회는 부활과 함께 장차 다가올 미래 모습입니다. 요한은 뒷부분인 <21∼22장>에서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을 매우 자세하게 기술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승리하는 교회는 단순히 미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로 오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서 해 아래 세상에서 전투하는 교회도 미래에서 오는 교회처럼 승리하는 교회가 됩니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그가 피력한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고난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영광이 담긴 부활은 한 몸이기에 서로 나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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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이 여자는 <11장>의 두 증인처럼 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11∼14장>까지가 삽입구이기에 <12장>에 등장한 여자는 <11장>과 연계해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 이 여자는 예수님이 오기 전과 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열두 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여자가 해를 둘러 걸치고 있다는 건 이 여자가 가진 하늘나라에서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시편 84:11>은 하나님을 해와 방패에 비유했는데, 해가 여자를 보호한 것이지 여자가 해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는 여자가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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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는데(마태복음 16:18),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가 예수님을 낳아 기르는 것으로 나옵니다(2절). 여자가 낳은 아이는 분명히 그리스도이지만,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탄생시켰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은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자로 비유돼 묘사됐습니다(이사야서 26:17, 미가서 4:10). 그리고 <마태복음> 서두에 있는 족보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교회를 통해서 해 아래 세상에 왔으면서도, 신약시대의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2절>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예수님의 상관관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 애써 부르짖었다고 한 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약속과 성취를 위해 얼마나 고난을 겪었는지를 요한이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이런 표현을 통해 아이를 낳은 여자처럼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성도에게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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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를 믿음의 신앙 공동체인 교회로 볼 수 있는 근거는 <1절>에 있습니다. <1절>에 하늘에서 큰 “표징(σημεῖονㆍ세메이온)”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표징은 <15:1>처럼 이미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사건ㆍ사실을 통찰력을 갖고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징조나 방향 지시자(pointer)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적ㆍ이적이 아닙니다. <요한복음>도 이 단어를 썼습니다. 요한은 이 단어를 예수님이 그분의 신성(神性)을 보여주기 위해 상징적으로 행한 기적을 표현할 때 썼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적 자체로 끝나지 않고 이정표 역할을 하며, 구약성경에 나온 선지자들의 상징 행동처럼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ㆍ요한계시록>에 나온 이 단어에 대한 용례를 통해 보면, <12장>은 사건ㆍ사실에 대해 통찰력을 갖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고 실제 사건이 아닙니다. 이 책의 흐름을 봐도 <1절>에 묘사된 모습을 가진 여자라면 보좌에 앉아 있어야 앞뒤가 맞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보좌에 앉지 않고 해산의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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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징”은 <1∼2절>에서 여자가 아들을 낳는 장면과 <3절> 이하에서 큰 붉은 용이 여자를 낳으려는 아들과 그녀를 쫓는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표현은 이 여자가 <17장>에 나온 큰 창녀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공동체라고 요한이 수사학적 장치를 통해 말한 것입니다. <1절>에서 해ㆍ달ㆍ별은 영광의 빛을 발하는 천체로, <6:12∼13>처럼 하늘나라의 심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게 여자와 연결돼 돼 있다는 건 여자로 비유된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존재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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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로 <3:11>처럼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이 썼던 월계관인데, 정당한 규칙으로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누군가가 씌워주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지만 사이비ㆍ이단 교주처럼 본인이 직접 만들어 쓴 게 아닙니다. 이와 달리 <3절>에서 마귀가 쓴 건 디아데마로 ‘왕권ㆍ단순한 힘’ 등을 상징하는데, 정치적인 힘ㆍ지배ㆍ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썼던 것입니다. 여자와 용이 머리에 쓴 게 다른데, 요한은 용이 쓴 디아데마를 <19:12>에서 의로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쓴 “많은 관”을 표현할 때 썼습니다. 그런데 <1ㆍ3절>과 <19:12>을 비교해 보면, 사탄은 예수님이 쓸 왕관을 가져다가 하나님이 씌워준 게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마음대로 가로챈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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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정체를 설명하면서 일부 사이비ㆍ이단에서는 천사가 인간과 더불어 성적으로 음란한 짓을 한 게 사탄의 기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음란은 인간 타락의 원인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바알ㆍ아세라숭배에서 볼 수 있듯이 우상숭배가 대부분 음란을 불러왔습니다. 또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에 속해 있던 우상숭배는 때로 인신 공양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4∼16, 유다서 1:6∼7>에 나온 거처를 떠난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음란함에 빠졌다는 말은 <창세기>에 나온 아담ㆍ하와처럼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들 마음대로 선악을 경정했다는 뜻입니다(이사야서 14:12∼15).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선악을 결정한 후, 저들은 그 행위의 결과물로 성적 음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들의 욕심에 저들을 내버려 두셨습니다(로마서 1:24ㆍ26ㆍ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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