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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그리스도인의 고난!'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8-09 16:35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그리스도인의 고난
(벧전 4:16‭)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욱 세상의 인생 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고난의 무게가 더 크기때문입니다.

세상의 논리에 충실하고 더 밝더라도 거기서 유익을 얻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아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 할 지언정 오히려 고난을 더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과연 누가 택하고 싶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세상에서 주어진 인생을 고난이라 여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말그대로 저와 여러분의 본질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나 주어진 역할도 아니고, 결단했기에 이루어내야 하는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심어진 삶 자체이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익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누군가 '당신이 받는 고난은 당신으로 인함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 인함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이라면 어떠한 답변을 하시겠습니까?

솔직히 고난은 괴로움입니다.

그리고 고난으로인한 괴로움 속에는 여러가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후회와 원망 그리고 분노일 것입니다.

고난을 받기 전의 상황을 돌아보며 고난을 피하고 넘어갈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그로인해 주어진 현실에대한 원망과 분노입니다.

가령,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다면 그 때 선택을 달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사실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기도했건만, 왜 하나님은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놔 두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계속해서 혹시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 잘 못 했거나 기도의 응답을 잘 못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말씀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고난의 괴로움 가운데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부끄러움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 그저 느끼게되는 후회나 아쉬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는 고난으로인한 부끄러움을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고난 속의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인이 고난받는 가운데도 침묵하시기에 마치 하나님이 능력 없어 보이는  듯한 부끄러움 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기에 가지고 있는 믿음이 조롱받는 부끄러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침묵하시는 듯 한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능력없다 여기며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세상, 곧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계시뇨"라고 묻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42:3) 

이것은 자신의 자녀가 받는 고난을 마치 방관하는 듯 한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다고 여기고 그러한 하나님이라면 아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고난 속의 부끄러움은 고난 중에 있는 나 자신 보다는 고난 속에 방치해 두시는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나를 조롱하는 듯 하지만 실지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비웃고 부끄럽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지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사는 일을 택하였기에 받는 고난을 보면서 어리석다 여기고 거기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 2:9)

그러나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나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드러나고 받게되는 부끄러움까지 같이 당하고 계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받게되는 고난 가운데의 부끄러움 그 또 하나는 믿음에 대하여 조롱받는 듯 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 즉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보고자 하지만, 이에 반해 같은 신앙인으로서의 사람들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의 현상과 결과를 보려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 보더라도 눈에 보이는 현상은 고난스러움 뿐이고, 고난의 원인 마저 고집스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 그만큼 뜨거운 믿음과 은혜로 충만했기에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그리하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에서 상당히 민망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1‭-‬23)

생각해보면 베드로는 주님이 당하실 고난을 만류하기 위해 오직 주님을 위한 마음으로 그리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그는 그 때 믿음으로 조언드린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고난의 길을 선택하시고 걸어가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길을 택하시고 주어진 잔을 드시는 주님의 고난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 현상과 그에 따르는 결과를 보면서 주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 때 베드로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두려움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겼던 분이 당하는 고난과 함께 드러나 보이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과 함께 드러나보일 수 있는 부끄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행 21:4)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 21:12‭-‬14)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2‭-‬24)

그리스도인으로서 받게되는 고난에는 그에 따르는 부끄러움이 있기에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고난과 부끄러움의 길을 자처하였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고난과 그로인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던 스테반 역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받게 되는 아니 그리스도인이기에 받을 수 밖에 없는 고난에는 어떤 이유로든 부끄러움이 있음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워 말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은 주님이 그 고난중에 계시며 실지로 고난으로 인한 부끄러움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담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난 중에 우리의 할 일은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아가는 중에 부딫히는 인생의 걸림돌을 보고 그 속에서 고난을 느끼며 부끄러워함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중에 걸림돌이 있을시 거기서 주님을 보며 오히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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