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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히브리서 4장 11절)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등학교 고학 시절 한 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을지로 1가에 위치한 9층 빌딩 청소팀 팀장을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옥상 창고에서 자취를 하며 빌딩 전체의 청소를 담당했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은 출퇴근을 하며 팀원으로 도움을 주었답니다. 당시에는 빌딩 내에 있는 모든 사무실을 토요일이면 대청소를 했지요,
평일 날은 전체 사무실을 나눠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무실 유리 안팎을 닦는 것은 제 몫이었답니다. 내부는 담배 니코틴이 유리에 엉겨 붙어 그것을 죄다 닦느라 힘들었고 외부는 줄을 타고 내려오며 유리를 닦았지만 대부분은 창문 바깥으로 나가 창문 턱을 딛고 서서 닦았기에 힘들고 위험 했답니다. 창문턱은 10센티 정도였는데 왼손은 위쪽의 턱을 잡고 오른손으로 유리를 닦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9층 유리를 닦는데 제일 까다로운 타원형으로 된 모서리 부분의 대형 유리를 닦다가 오른쪽 어깨가 돌출 네온 간판과 부딪치면서 그만 네온 하나가 떨어지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 감짝놀라 잠시 정신 줄을 놓아 버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위 턱을 잡은 왼손을 놓고 멍하니 서 있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연장 받은 생명 오늘까지도 기적으로 살고 있답니다. 주님의 은혜지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우리 성도의 영원한 안식과 관련하여 저자가 권고하고자 하는 중대한 사안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해야 할 것을 엄명하는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학술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논증의 결론을 도출하여 독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자에게 있어 독자들은 세기의 벽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며 오늘에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풍성한 추수의 때를 갈망하는 복음의 사신들이었고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미 어제의 묵상 구절에서 안식의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안식에 들어갈 수 없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습니다. 저자는 성경 역사 속에서 경험된 사례들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와 안식에 들어간 경우를 밝혔고 여전히 안식의 약속은 지상의 성도들에게 남아 있음도 밝혔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그러므로"는 경험론적 논증의 구속사적 사례들을 경험하였으니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자기의 일을 쉬고 있는 자들의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여기 "힘쓸지니(σπουδάσωμεν: 스푸다소멘)"는 재촉하거나 열심히 노력한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본문에서 이 용어가 시사해 주는 의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지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야 함을 목적합니다. 그러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저자는 3절에서 "이미 우리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전제했습니다.
다만 저자는 "힘쓸지니"를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에 종속시켜 열조들의 불순종을 부정적인 모델로 제시하고, 긍정적으로 순종의 모델이 될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은 순종임을 역설합니다.
그렇습니다. 노아에게 순종이 없었다면 구원의 방주는 건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순종이 없었다면 메시아의 약속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없었다면 오늘의 교회는 이 지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순종이라는 키워드에 안식의 의미를 새겨 가나안 입성을 회고하는 그대이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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