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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 선진들의 본(本) ♧
영국에 있는 조지 뮬러 고아원에서 일어난 실화의 한 토막이다. 어느 날, 아침 조식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식량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직원들은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장 조지 뮬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꼬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자,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은 무슨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으셨을까?"라고 말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긴 식탁에 빈 접시들과 빈 잔들만이 길게 줄을 서 놓여 있었다. 많은 원아들은 식탁 의자에 앉아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원장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조지 뮬러는 말했다. "자, 다 같이 고개 숙여 감사 기도를 드립시다. 주님, 주시고자 하는 오늘 아침 양식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식당 문이 열렸다. 이웃의 제과점 아저씨였다. "어젯밤 자꾸 이 고아원에 아침 양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여 새벽 2시에 일어나 지금까지 빵을 꾸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봉지 봉지에 가득가득 담긴 빵들을 아이들 식탁에 놓인 빈 접시에 골고루 나눠 주었다. 그렇게 제과점 아저씨가 다녀가고 난 직후 또 식당 문이 활짝 열리며 우유 배달부 아저씨가 우유 상자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이 고아원 정문 앞에서 수레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레를 가볍게 비워야 수리를 하러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우유를 여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먹게 하면 어떨까요? 원장님!"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 식탁에 놓인 빈 잔도 우유로 가득 채워졌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 그가 운영했던 모든 고아원이 그렇게 기도로 시작되고 기도로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특별한 사례일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 기독교 세계 안에서도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이 대목은 고아원의 아버지요 기도의 사람이었던 조지 뮬러의 전 생애를 돌아 봤을 때 그분의 믿음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고아원 아이들을 입히고 먹이기 위해 여기저기 유명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지도 않았다.
이는 자선 사업가들과 같은 유력자들을 의존하지 않고 오직 그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의존했다는 말이 된다. 인과 관계에서는 이해관계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순수성을 고집한다 할지라도 이해관계의 인과성(因果性)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위 사례에서의 제과점 아저씨나 우유 배달부 아저씨는 전혀 인과성이 개입되지 않았다.
순전히 편무적 자발성에서 비롯된 헌신이요 섬김이었다. 우리는 교육헌장의 백년대계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나 책들을 접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교육 현장을 차세대에 제공하며 아이들의 의지력을 키워주고 높은 이상을 품게 하고 있다. 그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소개하시고 계시는 신앙의 선조들, 구속사의 획을 그었던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만난다. 어떤 교리적인 설득력보다 확실한 사실로서의 증거가 되어 때때로 흔들리는 각자의 믿음을 굳게 붙잡아 최후까지 지켜 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아벨, 일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에녹, 빗발치는 세상의 이목을 의식하기보다 오롯이 하나님께 시선을 주목시켰던 순종의 사람 노아,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였으나 소명의 자리에서 발걸음을 옮긴 포기와 순종의 신앙을 실천한 아브라함이 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기에 묵묵히 아브라함을 내조했다.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심지어 기생 라합까지,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 이렇게 성경이 소개하고 있는 신앙의 선진들을 되새기다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에 발을 멈추게 된다. 바로 이 모든 이들의 신앙과 삶을 선두 지휘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조지 뮬러가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대명사를 자신의 전 생애에 이미지화함으로써 성경의 선조들 못지않은 성경 밖의 위인으로 영적 삶의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성경적 언약 공동체의 연속 선상에서 교회를 조명해야 할 절대성을 천명하고 있음이다. 현상 세계의 인과성이 개입되지 않은 신앙의 순수성을 계승하라 하심인 것이다.
앞 길을 가로막은 홍해 앞에 선 모세를 보자. 막다른 골목, 진퇴양난의 절박한 상황에서 인과성을 내세우며 비난하는 군중들의 함성 앞에 모세가 던진 한 마디는 인과성에 목숨을 건 군중들에게 있어서는 무모할 정도로 무책임해 보였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그렇다. 그대가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라면 조지 뮬러를 배워라! 그대가 교회를 리더 하거나 어떤 대의를 위해 리더 하는 위치에 있다면 모세를 배워라! 그대가 한 가족의 영적 호주이거나 어떤 결단의 딜레마 앞에 선 리더 자의 입장이라면 노아와 아브라함을 배우기 바란다. 신실한 성도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선진들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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