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8일 일요일
뉴스홈 종교
아나돗교회 정이신 목사, '짐승의 비밀과 한계!'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8-28 11:15

아나돗과 함께 읽는 성경 정이신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짐승의 비밀과 한계(요한계시록 13:11∼17)

[1] 
<13장>을 보면 사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처음에는 하늘에서 큰 능력을 받아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위장해 사람을 속입니다. 예수님을 흉내 내서 그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어린양처럼 등장합니다. 이때 용과 첫째ㆍ둘째 짐승 사이에는 유기적 관계가 성립됩니다. 첫째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았고, 둘째 짐승은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첫째 짐승을 경배하도록 그들을 미혹하거나 숭배하라고 무력으로 강요합니다. 용도 어떤 면에서는 짐승이므로 이 세 짐승의 관계는 “용-짐승-거짓 예언자(16:13)”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둠의 삼위일체를 결성합니다. 

[2]
<16:13; 19:20>은 둘째 짐승을 거짓 예언자라고 했습니다. 용은 하늘로부터 왔고(12:9), 첫 번째 짐승은 바다로부터 왔으며(1절), 둘째 짐승은 땅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11절). 그리고 거짓 예언자는 저들에게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19:20).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온 짐승의 모습이 공관복음에 나온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마태복음 24:24, 마가복음 13:22). 또 이걸 삼위일체신론과 비교해 보면 용과 첫째 짐승의 관계는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에 해당하고,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은 예수님ㆍ성령님과 기독교 사명자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11:4>에서 두 증인이 주님 앞에(에노피온) 서 있었던 것처럼,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수종을 들었습니다(12ㆍ14절).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을 “권세(엑수시아)”를 통해 증언했는데(4절), 이건 두 증인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 활동을 “권세”를 통해 한 것과 같습니다(11:6). 그리고 첫째 짐승을 경배한 사람들이 오른손과 이마에 받은 짐승의 이름, 짐승을 상징하는 숫자의 표는(16∼17절) 어린양을 따른 사람들의 이마에 있는 도장(7:3; 9:4), 이름(14:1; 22:4)과 병행을 이룹니다.

[3]
“치명상을 입은 상처가 나은 짐승”이 예수님과 같은 상처를 입은 존재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했습니다(3절). 짐승이 처음에는 간교한 여우처럼,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으로 이 땅에 왔다고 거짓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추종자가 늘어나면 섬김을 받는 자, 포악한 사자처럼 활동하기 시작합니다(마태복음 7:15). 모든 사람을 위해 헌신하러 온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다가도, 추종자들이 모여들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합니다. 사이비ㆍ이단 교주는 저가 계시로 받아 풀어낸 비유의 말씀으로 추종자들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추종자들에게 교주가 계시를 받아왔으니 저를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합니다. 예수님은 저들처럼 거짓말로 우리를 섬기지 않았습니다(마가복음 10:45). 예수님이 보여준 섬김은 그분의 모든 것으로, 목숨까지 희생했던 섬김입니다.

[4]
둘째 짐승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우상을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14절). 짐승은 큰 기적도 행하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도 했습니다. 첫째 짐승을 대신해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기적이란 미끼가 있기에 사람들은 첫째 짐승에게는 안 속아도 둘째 짐승에게는 잘 속았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사탄도 기적을 행합니다. 미래를 말하는 점사(占辭)를 남발하며, 사람들이 가진 병을 낫게 하고, 저들의 추종자들이 바라는 걸 이뤄지게도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아닌 사이비ㆍ이단 교주를 숭배하도록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모세는 이걸 경계했는데(신명기 13:1∼3), 신약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사역은 저들의 활동을 분간하는 명확한 잣대입니다.

[5]
둘째 짐승이 하는 일은 철저하게 첫째 짐승을 드러내는 일입니다(14∼16절). 그런데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 진리로 사람을 홀리고, 속이기에 위험한 게 아닙니다. 저들이 전파하는 거짓 확신이 더 위험합니다. 저들은 거짓을 진리에 의한 확신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리에 의한 확신이 오는 길을 미리 차단합니다. ‘못 먹는 감이니 다 익었는지 찔러나 보자’라는 식으로 저들의 소유가 아닌 데도 저들 것인 양 미리 훼손해 놓습니다. 그리고 정작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찾으실 때는 거짓과 성경의 참된 진리를 혼동해서 그 사람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못하게 합니다. 

[6]
“짐승이 칼에 맞아서 상처를 입었다”란 표현은(14절) 네로 황제가 비수로 자살했다는 소문의 이미지를 인용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네로의 최후에 대해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많이 유포돼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걸 적절하게 활용해 <요한계시록>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의 그림에 예수님을 그려 넣고 싶은데 그분의 얼굴을 알 수 없어서, 적당한 사람을 찾다가 어린 목동을 모델로 해서 그렸습니다. 이렇듯이 그도 종말의 상황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으로 표현된 용의 세력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네로를 모델로 해 짐승의 세력이 지닌 특징을 표현했습니다. 이때 그는 <다니엘서>도 같이 인용했습니다. 이 둘을 통해 종말에 대해 그가 본 환상을 당시의 언어로 설명했습니다. 

[7]
첫째 짐승은 상처를 입고도 살아났습니다(14절). 이 상처는 가벼운 상처가 아니라 치명상입니다(12절). 그래서 사람들이 속았습니다. 치명상을 입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난 걸 내보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치명상을 입었는데 살아났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치명상을 입었어도 다시 살아난 걸 보면 그가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땅 위 사람들의 칼에 맞아서 생긴 상처인데도 그걸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의 상처라고 속였습니다(14절). 이처럼 짐승이 성도를 속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니 이걸 잘 분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치명상을 입었는데 치유된 게 아니라, 완전히 죽임을 당했는데 성령님이 살렸습니다(로마서 1:4). 이와 달리 짐승은 완전히 죽은 게 아니라 죽을 것 같은 상처만 입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성령님이 살린 것인지, 그가 지닌 힘으로 살아난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고대세계에는 우상들을 대신해서 우상들의 말을 전하는 신탁(神託)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상에게 생기를 넣어준다”란(15절) 표현은 ‘우상에게 생명을 준다’란 뜻으로 생명을 주는 성령님을 흉내 내 영적인 황홀경 상태에서 우상들을 대언(代言)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8]
하나님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지 인간이 주님께 생명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상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고, 거꾸로 인간이 우상에게 생명을 줍니다. 이게 하나님과 우상의 차이입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위해 그분을 십자가에서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로마서 3:25). 그러나 우상들은 저들에게 인간이 생명을 부어 넣어야 하기에 우상을 위해 모든 인간이 희생해야 합니다. 우상에게 생명이 없기에 인간의 생명을 자꾸 뺏어가서 우상의 것으로 둔갑시킵니다. 현대에 이런 모습을 한 채 사는 사람들이 사이비ㆍ이단 교주들입니다. 저들에게 생명이 없기에 추종자들이 저들에게 생명을 전해줍니다. 그러면서 추종자들의 행태를 보고 저들을 믿어달라고 합니다.

[9]
하나님은 율법을 손에 감은 표나 이마 위에 붙인 표로 삼으라고 했습니다(출애굽기 13:9ㆍ16, 신명기 6:8; 11:18). 여기서 이마는 한 사람의 정신ㆍ생각ㆍ가치관을 의미하고, 오른손은 행위ㆍ생업, 사상적으로 실천하는 걸 의미합니다. 짐승의 표도 오른손이나 이마에 주어졌습니다(16절). 이걸 우두존대사상(右頭尊待思想)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중동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요한은 구약교회의 믿음을 회화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짐승들 역시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만큼 추종자들에게 저들을 위해 헌신하라고 강요한다고 했습니다(17절). 그리고 “아무것도 팔거나 사거나 할 수 없게 했다”라는 조치는 초대ㆍ초기교회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2∼3장>에 나온 일곱교회가 당면했던 현실에도 이런 모습이 반영돼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초대교회는 경제적인 압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은 비기독교인들과 한통속이 돼 저들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크리스천을 따로 구분했고, 이들을 경제적 이익의 분배에서 제외했습니다. 저들이 구별해 놓은 크리스천에게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jso8485@naver.com

[ 저작권자 © 아시아뉴스통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제보전화 : 1644-3331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의견쓰기

댓글 작성을 위해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 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실시간 급상승 정보

포토뉴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