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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산과 숲의 메시지'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8-30 07:47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산과 숲의 메시지 ♧

    도심의 중앙 깊숙이까지 그 위상을 거대한 존재감에 담아내며 산맥을 뻗쳐 시민들과 세월을 함께해 준 금정산, 백양산, 그리고 여기에 낮고 작은 봉우리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 봉우리들 중에 애진봉과 범방봉은 필자와는 아주 친숙한 이웃으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애진봉은 가끔이지만 범방봉은 생활 속의 이웃이다.

    멀리서 보면 온통 상록수 중에 키 큰 소나무들로 덮어 놓은 아주 멋진 외관으로 듬직한 인상을 준다. 봄이면 하얀 벚꽃들도 방긋방긋 웃어 준다. 가을이면 온갖 단풍들이 장관을 이룬다. 물론 겨울에도 앙상한 가지들이 상록수의 곁에 머물며 스산한 멋스러움을 차가운 냉기에 새겨 봄날의 생명들을 품고 있다.

    지금은 진초록의 계절 여름이다. 산들과 숲들의 전성기다. 아름답다. 그러나 산속 곧 숲속의 현실은 멀리서 바라본 산과 숲들의 외관과는 달리 마치 우리 인간의 오장 육부와 온갖 장기들로 복잡하게 조직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생체의 비밀을 숨김없이 펼쳐 놓고 있다. 여기저기 말라 죽은 나무들도 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어 흙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의 가지들과 낙엽들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돌들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이름 모를 작은 나무들이 얽히고설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인간의 기준에서는 거대한 산속이나 숲속의 그림은 한 마디로 어지러움이다.

    과연 창조 자의 눈에도 그럴까? 과연 창조 자의 관념 속에 산속과 숲속의 그림들이 무가치한 존재들일까? 어린 시절 벌거벗은 산들을 푸른 숲으로 가꾸기 위해 고사리 같은 손들을 빌어 풀씨를 따게 했고, 송충이를 잡게 했고, 아카시아 묘목과 소나무 묘목을 심게 했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아름다운 대한의 강산들이다.

    굵직하고 키가 큰 나무들도 아주 작은 나무에서부터 이름 모를 작은 풀까지, 심지어 썩어버린 나뭇가지나 낙엽이나 건초들도 필요조건에 절대적이다. 이렇듯 우리 인간의 생체를 조직하고 있는 그 어떤 장기에도 필요치 않는 장기는 없다. 도심을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의 삶과 긍. 부정의 모든 현실이 시정(市政)이다.

    알프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어느 마을 숲속에 한 노인이 세상을 등진 듯이 조용히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산 계곡의 물에 여러 가지 이물질들이 흘러 들어와 마을로 흘러오는 샘물을 더럽힌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고용한 사람이었다. 

    이 노인은 말없이 충실하게 그 마을 인팎을 순찰하면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줍고 샘물을 더럽히는 이물질들을 제거했다. 그러기에 그 마을은 날이 갈수록 깨끗해져서 어느덧 아름다운 휴양지로 소문이 났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사람들의 정기 총회가 열렸다.

    마을의 예산 안을 심의하던 도중 누군가가 샘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지불되는 돈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 노인은 무얼 하는 사람입니까? 무엇 때문에 별 쓸모없는 그 사람을 해마다 고용하여 마을의 소중한 예산을 허비하는 것입니까? 그 사람이 우리를 위해 하는 일은 시시하고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함으로써 결국 그날의 정기 총회에서 그 노인을 해고시키기로 결정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샘물에는 엷은 적갈색 이끼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며칠 후 샘물은 더욱 더러워졌다. 또 한 주가 지나자 끈끈한 기름 층이 샘물을 뒤덮고 물에서는 악취가 풍겨나기 시작했다.

    그 샘물을 먹은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질병과 전염병에 노출되어 온 마을에 초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당황한 마을 유지급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죄다 한목소리로 지난번 총회 때의 결정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옛날 샘물을 지키던 노인을 찾아가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다시 고용하게 되었다.

    그 후 몇 주도 채 지나지도 않아서 샘물은 다시금 맑은 생수로 변했다. 알프스 산기슭의 그 마을은 전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사람들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게 되었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의 관리인의 성실한 손길이 마을 전체를 깨끗하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지하고 보존하는 저력이 되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사례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잘 알고 지냈던 모 장로님이 "개척 삼 년까지 자립하지 못하면 아예 폐교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된다."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통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었던 때가 있었다. 꽤 규모가 큰 교회의 장로님이셨는데, 본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님을 아주 지극정성으로 잘 섬기며 교회에 충성하시는 참신한 일꾼이셨다.

    그런데 그 장로님의 논리라면 삼 년 이상된 미자립 개척 교회는 죄다 폐교시켜야 된다. 아마 교회사에서 이보다 무서운 저주는 없을 것 같다. 개척 교회가 없어지면 이 지상의 교회는 어떻게 될까? 물론 삼 년 내에 급성장하여 자립을 넘어 선교의 대열에서 빛을 내는 교회들도 간혹 있다. 과연 오늘의 교세가 큰 교회들이 죄다 삼 년 내에 부흥하여 자립한 교회들이겠는가?

    거의 없다. 더러는 수십 년의 인고 끝에 마을이 도시화되거나 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호기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처음부터 규모를 갖추어 시작하는 경우는 교회 분립일 뿐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는 문구를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면 개척 교회 목회자 가정의 영혼만으로도 몇 개의 천하보다 더 귀하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교회를 세울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반문하는가? 주님께서 약속하지 않았는가(마 6장)? 개척자들이 생활 방편으로 교회를 세운 자들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가장 어리석은 인생이다. 적어도 한 영혼의 가치에 목숨을 건 사명자들이라고 인정하고 싶다. 

    키가 큰 나무들이 작은 나무들에게 그늘이 되어 상생의 이웃으로 조화를 이루듯이 키가 큰 교회들도 그렇게 한다면 개척 교회들의 생활 전선은 전도의 현장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도심의 개척 교회들이 선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척 교회나 규모가 작은 교회가 활기 넘쳐야 기성 교회들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오늘은 제발 거대한 산과 숲을 외관에서만 보지 말고 산속과 숲속을 들어가 보길 바란다. 도심의 높이 솟은 빌딩들과 고층 아파트만 보지말고 빈민들이 오밀조밀하게 살아가는 서민 사회도 보길 바란다. 모두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큰 송곳은 작은 구멍을 뚫을 수 없어도 작은 송곳은 큰 구멍도 뚫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반드시 작은 것이 있기에 큰 것이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또한 큰 것이 있기에 작은 것의 울타리가 된다는 점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키조차도 똑같게 섭리하지 않으신다. 키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크게 할 수 없음을 성경이 증언한다.(눅 12:25)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조화에 있음을 바로 알자.(롬 8:21, 28)

    닐 암스트롱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촌이 너무도 아름다워 경탄을 금치 못했다는 기사를 아주 옛날에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강산이 너 나 할 것 없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지구촌 어느 곳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경탄에 경탄을 환호하게 한다. 바로 그대 역시 그 속에 있다. 개척 교회도 기성 교회도 그 속에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숲속의 메시지에 눈을 떠고 귀를 기울이라!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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