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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야고보서 1장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힌남노가 쓸고 간 자리에 인간의 한계를 여백 없이 새겨 놓고 간 숱한 흔적들이 지상파를 뒤흔들어 놓고 있어 가슴이 쓰리고 목이 매입니다. 과학만능 사상이 정보 지식 사회를 리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아날로그 시대로 역주행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이러니할 뿐이네요.
해마다 이맘쯤이면 반복되는 안전 재해 예방법이 놀랍게도 아주 옛날 재래식 경험론이 각광을 받으면서 기상 천외 한 건축 기술들이 맥을 쓰지 못하고 있지요. 한마디로 위기를 예상하지 않고 인간 편리에 정복되어버린 두뇌들이 절대 안전 대비를 무시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슬로건을 마치 국시(國是)처럼 여겼던 정부가 있었지요. 국방력, 경제력, 노동력, 교육의 백년대계 등등 모든 분야가 지향했던 이념이 튼튼, 탄탄, 신뢰, 정직, 협동, 발전 등 무쇠 문화의 창달이 꿈이요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백년의 수고가 단 몇 초, 몇 분, 몇 시간 만에 무너지고 마는 살얼음판 문화가 각광을 받으니 아이러니지요. '단디'가 그립습니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로마 제국의 가혹한 기독교 박해에 직면한 기독교 사회가 믿음과 사랑의 깊은 교제를 점점 상실해 가는 위기 신앙이 유대인 성도들에게 몰아쳤을 때,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가운데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아울러 그들 안에 남아 있는 믿음을 적극적인 행위로 돌출시켜 사랑과 화평의 교제를 일구어 낼 것을 권면한 본서 전체 내용을 배경으로 합니다.
믿음을 일상 생활에 접목하는 문제, 믿음과 행함의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본서는 신앙의 실천적인 면을 역설적으로 교훈한다는 측면에서 '신약의 잠언'이라 불리기도 하고, 또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불의와 사회적 불평등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사회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측면에서 '신약의 아모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가 인류 사회학적으로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구성원이 되었고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통적으로 성경적 진리에 배치되는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배설물처럼 버리는 소극적 청결 작업인 회개의 실천은 당연지사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마음속에 들어와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말씀(로고스)에 힘입어 점점 새롭게 변화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성장해 가는 것은 우리 신앙 세계의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따라서 저자는 먼저 소극적인 결단을 아주 강하게 어필합니다. 본문의 "내버리고(άποθέμενοι: 아포데메노이)"는 '옷을 벗어 버리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최선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심하게 자신을 살펴 제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정욕 등을 내버려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과거 출애굽 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나안에 입성할 때 반드시 실천했어야 할 중차대한 과제였음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요한 칼빈이 종교 개혁을 단행할 때의 단호했던 처신을 작금에 이르러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악무도한 칼을 휘둘렀다는 비판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빗발 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대목은 칼빈의 칼은 진리를 파수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칼이었지 정치적으로 인류의 평화를 목적한 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엄명하신 가나안 '모든 족속을 전멸시키라'(신 7:16)는 하나님의 명령 또한 칼빈에게 와 동일한 지탄을 할 텐가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까이해서도 용납해서도 안 될 마치 우상 숭배와 같은 맥락에서 철저하게 경계해야 할 '모든 도덕적인 악'을 통틀어 명시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몸에 불결한 상처나 옴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붙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의술을 찾아 깔끔하게 치료할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권고로 전환하여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라고 강조합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구원의 수단입니다. 곧 수신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임을 암시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신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의심의 불순물일지라도 그대 안에 남겨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저자의 적극적인 권고의 요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 있게 말씀에 응답해야 할 것과 그것을 실제로 삶의 행위로 표현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을 것을 권고합니다.
그렇습니다. 본서의 저자는 믿음과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전제하고 접근하겠다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의 하나 됨을 전제합니다. 믿음(본질)의 실천 현장(현상)에 어떤 불순물이 개입하여 믿음(본질)에 일치할 수 없도록 하는 세상의 정보를 다각도로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당시의 기독교 박해 상황에서 세상을 온통 지배하다시피 하는 불순물이 난무한 상황에서 우리 성도는 그런 세상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 그리스도인들이 봐야 할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와 큰 구원의 대 장정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그 역사에 수종들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불순물을 벗어던지고 "마음에 심어진 말씀"에 민감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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