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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사랑교회 담임 김규태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창세기 20:1-18
아비멜렉의 온전함, 아브라함의 선입견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야기는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속인 이야기입니다. 마치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애굽 왕 바로에게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던 일과 흡사합니다.
그때는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고, 하나님으로부터 후손을 약속 받은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세였고, 내년 이맘 때에 너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만약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였다면 이삭의 아버지가 바뀔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만일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을까요? 그가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11절)."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랄 왕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6절). 때문에 아브라함의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잘못된 규칙을 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거짓말을 통해서 민망한 상황을 맞이하고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의 오라비라 하라(13절)."라고 아내 사라에게 부탁했습니다. 애굽에서 그랄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아브라함의 습관적인 거짓말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이번 일을 겪은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아브라함은 이전과 동일한 태도를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잘못된 규칙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라가 진정으로 아브라함을 위한다면 부당한 남편의 요구에 대해서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합니다.
이일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책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에도 아브라함을 책망하시지 않으시고 그를 선지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정작 아브라함은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그의 기도를 통해 닫혔던 아비멜렉 집의 모든 태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편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과거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잘못된 원칙을 세울 때 동일한 죄를 반복하여 짓게 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연약함이 저의 연약함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사랑을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제가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