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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사랑교회 담임 김규태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창세기 21:1-7
‘말씀대로’ 이루시고 웃게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대로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1절)”
사라가 임신한 것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고, 사라가 임신한 시기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또한 사라가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은 것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세였고, 사라의 나이가 구십 세였으니, 노산 중에도 이런 노산이 없습니다. 노산인 경우에는 유산의 가능성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임신하고, 건강한 아들을 낳은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녀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을 선물로 받은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17:19).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17:10-14).
드디어 사라가 웃었습니다. 사라를 웃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라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나 놀랍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라가 자식들에게 젖을 먹일 것이라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내가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도다.”
이 말에는 사라의 감사와 만족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제 사라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이제 사라는 남편에게 떳떳합니다.
어쩌면 사라가 그동안 남편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가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웃음이 넘쳐납니다. 등장인물도 웃고, 글을 쓴 이도 웃고, 글을 읽는 독자도 웃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이후로, 지난 25년간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습니까? 오죽했으면 사라가 “여호와께서 내가 아이 낳는 것을 막으셨다(16:2, 우리말성경).”라고까지 말했을까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사라가 자기 남편에게 여종과 동침하기를 요구했을까요?
사라가 아들을 낳고 싶다는 욕망과 소유욕에 붙들려 있을 때에는 그 가정에 평화가 깨어지고, 웃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는 여종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그 아들은 결코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사라에게 이러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두 번씩이나 오빠 행세를 할 때에도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남편의 거짓말도 문제였지만, 그 때 만약 사라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그녀는 두 번씩이나 이방 왕에게 끌려가는 수모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라가 욕망과 소유욕에 붙들려 있을 때에는 그녀에게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시자, 사라는 웃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사라의 웃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그 소식을 듣는 자들마다 사라와 함께 웃게 될 것입니다(6절). 저도 사라와 함께 웃고 싶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행하셨으므로, 저도 사라와 함께 웃고 싶습니다.
jso848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