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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야고보서 5장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Grebill은 '너그러운 사람은 그가 베푼 은혜는 발아래 두나 받은 은혜는 심장 가까운 곳에 둔다'라고 했답니다. 어쩌면 현실의 논리와는 정 반대의 역설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오늘의 세태에서 너그러운 사람은 희귀에 속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자아 만족, 개성시대 등을 기반으로 자아 정체성과 자아실현 욕구를 표방하는 목소리들이 점증되어 감이 이 마지막 시대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회개와 통회의 홍수 시대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의인 아홉 조차 허용하지 않고 전적 타락을 본 보인 소돔과 고모라의 복사판?
그래도? 또 그래도? 미련이 남아 유황불 심판에 불타는 악의 도성을 뒤돌아 본 여인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라고 경고하신 주님의 음성이 귓전에 울리지 않나요? 혼인 잔치에 신랑이 더디 온다 하여 태만과 게으름으로 침륜에 빠진 미련한 다섯 처녀의 전철을 신나게 밟고 있지는 않나요?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벧전 5:8) 했지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야고보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교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형편들, 곧 부정적으로는 고난 당하는 자나 병든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긍정적으로는 즐거워하는 자가 있을 수 있음을 배제하지 않고 부정적인 형편에 처한 성도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할 것을 수식했고, 긍정적인 형편에 처한 성도에게는 믿음으로 찬송할 것을 수식한 권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 즉 치유하신다는 앞절의 내용을 결론 부로 이끄는 의미가 강합니다. 이는 수식 구인 믿음이 명사 기도에 붙어 신유의 기적이 반드시 믿음을 요구하는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기름을 바르는 의학적인 치유 행위가 일반화 되어 있다 할지라도 이것 역시 주께서 치유를 허락해 주셔야 됨이 선행됩니다.
그리고 모든 질병의 원인이 죄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문은 일부 질병의 원인이 죄에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질병이 죄에 대한 징계의 수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고전 11:30). 설사 질병의 원인이 죄와 관련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기도는 절대적입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기도는 죄 사함의 은혜를 유발하여 질병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운집한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지붕으로 올라가 들것에 메고 간 중풍 병자를 지붕을 뚫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아 내린 네 명의 이웃들이 보여 준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은 물론 그의 죄까지 사해 주셨습니다.
곧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라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죄의 권한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롯이 믿음으로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당신의 의(義)에 의존 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전권을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교회는 고난 당하는 자나 병든 자가 회중 가운데 있을 때, 서로 죄를 자복하면서 병든 자가 낫기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합니다. 여기서 자칫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에 대한 부분을 곡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고백하며(έξομολογεισθε: 엨소몰로게이스데)"는 전혀 강제성이 배제된 자발적인 상호 간의 고백을 말합니다.
곧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는 죄가 병의 원인이 되었을 때, 이를 서로 고백적으로 나누면서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격려의 약속입니다. 여기에 부차적으로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있음이 강조됩니다.
이 대목에서 의인은 신학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본문에서 강조된 의인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한 개인의 문제이든 한 가정의 문제이든 교회 공동체 앞에 기도의 제목을 내어 놓고 합심하여 기도함이 옳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은 그대가 이 지상에서 원치 않게 만나는 무수한 문제들 앞에 직면했을 때, 본문의 말씀을 꼭 기억하셔서 믿음의 기도를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고백하여 건강한 신앙과 삶으로 매진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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