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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채플교회 이광형 목사, '거하는 삶'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09-18 16:53

도곡동 드누보 문화선교센타 이광형 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거하는 삶
(요 15:7 )

여러분은 오늘 말씀에서 어떤 단어가 가장 눈에 띄십니까?

그리고 만일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셨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가장 흡족하게 느끼게 된 것은 어떤 부분 때문입니까?

이 질문을 토대로 오늘 본문 말씀을 구분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거하고, 거하면 ; 구하면, 이루리라'

솔직하게 우리는 '...거하면' 이라는 앞의 두 단어에 은혜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구하면 이루리라' 가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거하면'이라는 말씀을 '신앙적 삶' 이라고 여기고 '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에 관해서는 '믿음의 결과'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믿음과 신앙의 삶은 곧 은혜이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만일  믿음의 결과라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 기대와 바램대로 얻지 못 할 때 시험에 들 뿐 아니라 '거하고, 거하는' 신앙적 삶 까지도 외면해 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삶을 바란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구해 이루어지는 일에 목적을 둔 평탄한 인생을 살기위한 조건이었을 뿐입니까?

흔히 은혜에 대해서 일시적인 사건이거나 이루어져야 하는 현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은혜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수시로 받아야 하는 것이고 받았기에 그것은 속히 믿음의 결과로 드러나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만일 받은 은혜가 믿음의 결과로 드러나 내 삶에 직접적으로 보여지지 않으면 그것은 나와 크게 상관 없거나 그저 잠시 머물다 가 버리는 잊혀진 은혜로 간주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잠시 머물다 시간되면 지나가 버리는 은혜가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삶 속에 보여지는 믿음의 결과라 이야기하며 그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는 많이 받고, 크게 받는 것이 맞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받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그로인해 곧 드러나 보여야 할 결과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받는 것과 동시에 누려야 합니다.

또한 은혜는 단지 주님의 손에서 나의 손으로 옮겨 쥐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는 분을 그 자체로 내 삶에 모시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거한다'는 말씀의 의미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거한다(remain)'는 것은 단순히 잠시 들른다거나 시간 내어 머무르다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손에 쥐기 위하여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살아남기 위하여 그것을 지키고 준수하고 따른다는 'abide'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지켜야할 뿐 아니라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거하는 것' 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그저 받을 은혜를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키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목숨을 걸고 지키며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겠습니까?

줄애굽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늘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거했습니다.

하나님 역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늘 안에 거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규례와 법도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1:1)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것은 가능한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하는 명령입니다.

어느정도의 타협과 수고로 여호와의 그늘에 거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으로가 아니라 오직 철저한 순종으로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키며 광야의 수많은 유혹과 공격 그리고 혹독한 삶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에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광야에서 반드시 살아남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말씀을 지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더 철저히 지키는지를 두고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이는 주님을 배신하고 도망갔던 베드로에게도 그동안의 가르침에 대해 묻고 질책하심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느냐 물으신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5)

따라서 광야에서 말씀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빈틈없고 완벽한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완벽하고자 할지라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여호와의 규례와 율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규례와 율법을 더 완전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여호와를 사랑할 때 가능한 일  입니다.

율법과 규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규례와 율법을 자신들의 힘으로만 지켜내고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힘든 또 하나의 삶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규례와 율법은 오직 주어진 은혜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규례와 율법안에 거할 때 동시에 그 광야에서 자신들의 삶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때 말씀과 함께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그것이 은혜임을, 내가 날마다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비록 광야와 같은 삶이기에 끊이지 않는 풍파와 유혹 또는 고난이 불어 올지라도 주님 안에 거하는 당신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동시에 당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반석위에 굳게 선 견고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거함으로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구하며 말씀대로 이루어주시는 그 분의 능력을 또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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