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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신기루!'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10-05 11:58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신기루(蜃氣樓) ♧

    이집트에서 끝없는 행군을 계속하던 중에 그렇게도 용맹했던 나폴레옹의 군인들은 격노한 적군의 공격이 아닌 목마름으로 목을 조여오는 극도의 갈증에 비실거리며 점점 군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터벅터벅 힘없이 걷고 있을 때 맨 앞줄에서, " 물! 물이다! 물이야! "라는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피곤과 갈증에 지칠 대로 지친 눈으로 지평선을 바라보았을 때 호수처럼 생긴 물체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현란한 태양빛 속에서 물줄기가 가물거리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 그제야 군인들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호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이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고 계속 달렸는데도 그 호수는 점점 멀어져만 갔고 급기야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의 갈증은 마지막 남은 힘을 갑자기 쏟아 내어서 그런지 그 이전보다 훨씬 심해져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본 것은 시원한 물이 고여 있는 푸른 호수가 아니라 사막의 신기루였던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롯은 삼촌 아브라함이 제시한 향후 거취를 선택해야 할 아주 중요한 순간에 눈앞에 펼쳐져 있는 넓은 들을 바라보았다. 목축업에 적격인 비옥한 땅과 멋진 성읍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삼촌이 먼저 나에게 선택권을 준 것은 내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아마 삼촌은 두고두고 후회 할거야!'라고 안도의 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롯의 선택 이후의 성경 역사는 롯의 선택에 축복의 손을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롯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찬란한 겉치레는  온 장기에 암세포가 정복해버린 상태와 일반이었으니 더 이상 미래의 보장은 털끝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허겁지겁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한 롯의 흔적은 저주받은 암몬과 모압이었다.

    영국 속담에 "탐욕은 인간을 소경으로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보편적 인간들이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는 이기주의는 손대는 것마다 모두 오염시키는 무서운 전염병이나 감염 바이러스일 뿐이다. 가장 멀리해야 하고 가장 먼저 버려야 하고 가장 싫어하고 미워해야 할 이기주의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과 밀착되어 있다.

    물량적 가치관, 어느새 구속 역사의 신령한 가치관을 밀쳐내고 현대 교회의 선두 주자로 행세하고 있는 샤만니즘적 기복 사상을 왕좌에 올린 것이 물량적 가치관이다. 모든 교회가 기복 신앙을 부정하며 거부한다. 그 누구도 기복주의를 주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복 사상은 여전히 신앙 세계 위에 군림하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어떤 사람이 부자인가? 만족한 사람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런 사람은 없다"라고 이 세상을 꼬집었다. 물량적 가치관이 배제되었든 아니 되었든 만족의 상태에 득달하여 탐욕과 욕심에서 완전히 자유한 인생은 이 지구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손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적 만족을 추구하며 저기 앞서 보이는 신기루를 좇고 좇는 군상(群像)들이 또한 지구촌의 실세들이다. 솔로몬은 "아,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전 2:25)라고 했다. 그랬다. 그는 무엇이든지 자신의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않았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수고로 말미암은 몫이기에 마음이 기뻐했었지만 그것 역시 만족의 속성과는 동떨어진 허상이었다고 고백한다(전 2:10~11). 신기루, 놀랍게도 아브라함에게는 신기루가 없었다. 자신이 선 땅에서 아무리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척박한 땅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신실할 수 있었다.

    어떤가? 꿈과 비전이 어찌 금기 사항이겠는가?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인간 행동의 긍정이 어찌 부정될 수 있겠는가? 성공지향적 인생, 미래지향적  인생, 최상의 미사여구로 장식된 인생이지 않은가? 그러나 솔로몬의 고백 속에 이 모두는 허무의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만다.

    왜일까? 인간적 갈증의 추구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우물의 물은 다시 목마르겠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다(요 4: 13~14).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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