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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화액 전과 후의 교훈'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2-10-11 16:16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 화액(禍厄) 전과 후의 교훈♧

    M. R. de Haan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미망인의 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갔다. 가서 보니 그 미망인이 애지 중지 키우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운명을 달리 한 까닭이었다. 제니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소녀였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 미망인은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아래와 같이 털어놓았다.

    제니는 세 살 때 몹시 않은 적이 있었는데, 의사의 진단 결과는 제니의 병세가 너무 깊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보를 전해 주었다. 의사의 통보에 젊은 미망인의 심경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제니의 엄마는 결코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청천벽력 같은 딸의 사형 선고 앞에 직면한 그녀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도저히 정당하다고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아주 잔인한 분으로 몰아붙이면서 난폭하게 반항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와 광야에서 보인 모습이었다. 그녀는 딸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요구하면서 만약 그렇게 하여 주시지 않는다면 절대로 교회를 출석하거나 하나님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전 포고를 했다. 이미 의사의 사형 선고가 내려졌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

    그렇게 하여 제니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열세 살 때까지 정상적인 삶을 살며 엄마에게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접어들면서 제니는 불량소녀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마침내 십칠 세가 되었을 때는 정말 큰 문제를 일으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비극적인 종말은 Haan이 그 미망인의 집으로 불려 갔었던 바로 그날 아침 제니의 어머니가 토설한 고백에 담겨 있다. 급히 와달라는 청을 듣고 그 집 안에 들어섰을 때 제니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쏟아낸 말이었다. 곧 그녀가 토설한 다음의 고백 앞에 멍하니 서서 전한다.

    "제니~ 제니가~ 죽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요. 어젯밤에~ 자기 방에서 목을 매달았어요!" 그렇게 통곡하던 그녀는 몇 분이 지나자 경련을 일으키듯 흐느껴 울면서 유구무언인 Haan 앞에 탄식했다. "오, 선생님, 그 아이가 세 살 때 나는 왜 하나님께서 그 애를 데려가도록 그냥 놔두지 않았었을까요 !"

    이사야는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사 57:1)라고 했다. 개역성경에는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로 번역됐다.

    그리고 다음 2절은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라고 결론짓는다.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으로 개인적 종말관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문제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양위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왕상 2:2)라고 하지 않았는가!

    다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서와는 달리 세상을 떠나가는 순서가 빠르거나 늦거나 할 뿐이지 죄다 가는 길은 일반이다. 그런데 성경에 유일하게 자신에게 닥쳐온 죽음이 싫어 하나님께 기도하여 십오 년 간의 생명을 연장 받은 인물이 나온다. 그는 남조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었다(왕하 20장).

    그렇게 생명을 연장 받은 히스기야 왕의 향후 십오 년의 행적은 거의 부정적이었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남조 유다를 패망으로 이끈 근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첫째는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에게 극비의 국력 정보를 남김없이 죄다 보여 준 사건이다(왕하 20:13). 그 결과는 바벨론 유수에 대한 예고였다(16~18).

    두 번째는 그 후 므낫세의 출생이다. 므낫세가 십이 세에 히스기야를 이어 양위를 받았으니(21:1)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 받은 후에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므낫세의 만행은 열왕들 중에 최악이었고 바벨론 유수의 예고를 돌이킬 수 없도록 쐐기를 박는 결정타가 되었다.

    물론 노후에 회개하기도 하고 요시야의 개혁 정치가 반짝 빛을 보지만 이미 므낫세의 악정에 만신창이가 된 백성들을 바른 길로 어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만약 히스기야가 십오 년의 생명 연장을 받지 않고 다윗의 고백과 같이 이왕에 가야 할 길인 것을 순리대로 갔더라면 최소한 위 두 가지의 원인 제공은 없었을 것이었다.

    위 미망인의 절규가 바로 그것이었다. 제니가 세 살 때 순리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더라면 최소한 주님 품으로 갔을 것이고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엄마의 오열이었던 것이다. 화액(禍厄) 전, 최악의 불행이 유발되기 전, 곧 가장 신앙이 두터웠던 시기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성도의 욕망 중에 최선이기에 소망이 된다.

    그렇다고 히스기야의 기도를 부정하거나 사경 중에 하나님께 절규하며 기도하는 성도 편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셨을 때, 금식하며 철야 기도에 전혀 몰입했던 모습을 거의 입체적으로 공개했다(삼하 12:15~17).

    그러나 아이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는 즉각적으로 제 본분으로 돌아가 왕정의 업무에 임한 사실을 보게 된다(18~23). 그렇다. 성도는 극한 상황에서 절규적 기도는 필수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고 호소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반듯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제니의 어머니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행위의 절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또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선행을 빌미로 응답의 조건을 제시하는 기도(왕하 20:3)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기에 배워서는 안 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거나 선행이나 공적을 내세울 명분이 없음을 기도 생활에서 반드시 전제해야 옳을 것이다. 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조건으로 전제하는 것은 성경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어 지향함이 옳다. 

    예를 들어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는 약속의 말씀을 조건을 내걸고 기도하는 것은 오히려 주께서 원하시는 바다. 오늘은 죽음의 때와 관련하여 화액 전의 평안을 사모하시고 성경이 제시하는 화액의 상황이 그대의 인생 여정에 개입되지 않도록 징검다리 잘 두드리며 살길 바란다.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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