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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 '생명 복음의 기둥'

[서울=아시아뉴스통신] 오준섭기자 송고시간 2023-01-13 21:59

수정제일교회 이준효 원로목사./아시아뉴스통신=오준섭 기자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편143:8)■

   (신명기 19장 13절)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D. L. Moody는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주관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은 최초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 명시된 내용이 생육과 번성과 땅의 정복과 모든 만물을 다스림이기 때문입니다(창 1:28). 주객이 전도된 현실은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는 세상이 향락에 취해 현상 세계의 행복을 추구할 때, 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이 불순종한 권력에 빌붙어 거짓 예언으로 현실의 위기를 평안으로 위장할 때, 눈물의 떡과 물을 마시며 회개를 촉구했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고 있나요?

    오늘 묵상할 말씀은 모세의 두 번째 설교 중 후반부에 속한 부분으로 가나안 입성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함과 동시에 새롭게 펼쳐 나갈 신정 국가로서의 사회화를 염두에 둔 사회생활에 관한 규범을 교훈한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본장은 십계명 중 제 다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수평적 대상 체계인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과 관련된 제반 규례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위치한 단락(1~13)은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도피성 제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14절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여덟 번째 계명에 대하여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과 관련될 경계표(境界標) 제도이며, 15~21절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아홉 번째 계명과 관련된 위증인(僞證人) 규례입니다. 까닭에 이 대목은 한 사회의 중심에 세워져 그 사회를 지태시켜 줘야 할 기둥과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규례들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있어 여호와 신앙의 본질을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인간, 수평적으로는 인간과 인간관계에서 접근하여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인 사랑의 실천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곧 구약의 여호와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만을 경외하던 의식(儀式)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좇아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는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던 아주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행위 종교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 양면성은 예수님께서도 우리 기독교의 황금률로 명령하셨습니다(마 22:37~40).

    이와 관련하여 본문의 "그리하면"은 여섯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것과 관련된 도피성 제도에 관한 규례를 엄숙하게 실천하라는 명령과 그 명령에 대한 순종을 조건으로 한 약속입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동쪽은 므낫세의 바산 골란과 르우벤의 베셀과 갓의 길르앗 라못, 이 세 성읍이었고, 서쪽은 납달리의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산지 세겜,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이 세 성읍이었습니다(수 20:7~8).

    도피성 제도의 목적은 무모한 피 흘림과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사회적 중재 제도로서 아무런 고의성 없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피의 보수자로부터 그 생명을 보호하도록 한 데 있었습니다. 특히 이 도피성 제도는 예표론적으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인간 사이에 화평을 중재하신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롬 8:1~2).

    이 도피성 제도의 영적 의미는 원죄와 자범죄에 노출된 죄인이 도피성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기만 하면 용서와 구원의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과, 도피성이 요단 동편과 서편 곧 약속 밖의 땅과 약속 안의 땅에 설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영적 도피성인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원자 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점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구원의 주님으로 부르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단순한 복음적 진리를 일깨우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독자는 실천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기를 힘쓰야지 허공을 향해 신의 이름만 부르는 것과 같은 자기만족적 신앙에 침잠해 있음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 성도의 자존감을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에 담아내어 구원과 심판의 능력인 십자가의 사신임을 피력했습니다(고후 2~3장).

    그렇습니다. 오늘은 모세나 여호수아 당시 이방 국가들의 그 어떤 사회에서도 도피성 제도는 없었으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은 유일하게 달랐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과 함께 그 사회의 중심에 세워진 생명 복음의 기둥이었음을 꼭 새겨 보아야겠습니다. 여기에 그대의 존재감을 담아내길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jso84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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